고령화 사회.아늑한 황혼 실버타운 (5)선시티 치매병원

입력 1999-01-21 14:08:00

세계에서 의술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이지만 이곳에서도 치매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다른나라에 비해 치매환자가 적지않고 그 증상도 다양하다. 이번 취재에 가장 비중을 둬 3일을 기다린끝에 치매 최고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로버트 후버치매센터'에 '코니 매츠거' 박사를 만날 수있었다. 그의 대답은 한마디로 "노"였다.

그는 "치매는 완치되는 병이 아니라 진행 속도를 조정 할 뿐"이라고 말한다. 현재 치료방법으로는안정된 생활환경을 만들어 지난날의 기억을 되찾게하는 방법이 최고라고 일러준다.로버트 후버치매센터는 단층으로 병원이라기 보다 고급저택과 흡사하다. 이곳은 할머니들만 수용하고 있는 36실의 격리병동이 있다. 병실은 2인1실로 출입구는 같으나 중앙에 두꺼운 벽이 가려져있고 병실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어 사생활이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병실 내부벽에는 가족들이 붙여 놓은 사진과 갖가지 장식품으로 꾸며져 있어 가정집 거실 같은분위기다. 흔히 나는 노인전문 병원 특유의 냄새도 전혀 없다. 의사나 간호사도 가운을 입지 않는다. 병원생활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에 이용한 것이다. 특히 치매환자 경우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곳 병실 복도에는 '기억의 박스'라는 특이한 장식장이 있다. 이 박스속에는 치매가 오기전까지환자가 가장 좋아했던 물건들을 가족에게 받아 진열해두고 있다. 사랑했던 남자친구 사진에서부터 신발, 인형등 지난날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들을 환자가 직접 만지거나 보면서 과거를 기억해내게 하는 치료방법이다.

이 박스는 모든 환자에게 주어지며 간호원들은 그 물건을 환자치료에 적극 활용한다.또하나의 치료방법으로 환자들에게 나인볼 당구게임을 자주시킨다. 1부터 9까지 차례로 볼을 치게돼 기억력을 살리는데는 큰 효과가 있다고 '제니 케스' 치매센터소장이 강조한다. 이 게임은 과학적으로 치료효과가 검증되어 미국 대부분의 치매병원에서 사용한다는 것. 또한 환자들이 세탁이나 음식 만들기를 원하면 모든 재료를 주고 직접 실습하게 한다.

이곳 환자들의 증세는 심한 정신분열에서 가벼운 행동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벼운 발작증세를 보이면 간호원들이 엉뚱한 일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언어는 반드시 존칭어만 사용하는 것이 철칙. 그러나 심한 정신분열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신경안정제와 같은 약물로 잠을 재우는 방법이 최선이며 환자를 독방에 가두는 일은 절대 없다.

의사는 하루 3명이 교대로 근무하나 하는일은 별로 없다. 35명의 간호사와 2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이곳에 일꾼. 환자의 모든 행동은 항상 간호사의 시선안에 있다.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친구일뿐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막아주는 감시원이기도 하다.

갑자기 병동이 분주하더니 애완견들이 이방저방을 헤집고 다닌다. 오늘은 애완견을 좋아하는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집에서 기르던 개를 이곳에 가져온것. 환자들의 애완견 선택도 변덕이 심하다. 자원봉사자 스잔나 할머니는 "지난달에는 나의 '해피'를 서로 차지할려고 했는데 오늘은 30분이 지났는데도 팔려가지 않느다." 며 웃어보인다.

취재도중 환자들의 사진을 한장 찍자고 부탁하니 치매센터소장이 무조건 기다리라고 한다. 취재를 마칠쯤으로 생각하고 카메라를 들여대니 "이렇게 무식한 양반이 어떻게 기자를 하느냐"고 소장이 화를 벌컥낸다.

"기억은 제대로 못하지만 이들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지 않느냐?"며 뉴욕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허락이 오면 그때는 촬영해도 좋다는 이야기다. 빠르면 한달쯤 걸린다고해 미국임을 실감케 했다.〈安相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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