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반잠수정 격침전말의 허와실

입력 1998-12-19 14:11:00

우리 군이 전남 여수앞바다에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을 격침시킨 것은 육해공 합동작전의 개가로평가되고 있으나 몇가지 '옥에 티'를 남겼다는 지적도 함께 받고 있다.

군내에서는 일단 이번 작전이 반잠수정을 최초 발견한 육군 초병의 활약, 반잠수정을 추격해 함포로 격침시킨 해군 함정의 기동성, 공군 조명기 및 초계기의 지원등 3군의 원활한 협조로 거둔성공작이었다고 보고 있다.

김진호(金辰浩) 합참의장은 지난달 19일 경기 강화앞바다에 침투한 북한 선박을 해병사단 단독작전으로 나포하려다 실패한 것과 이번 작전을 비교해 "모처럼 작전다운 작전을 했다"고 자평했다.그러나 이번 작전에서 △육군 야간감시장비가 최초 반잠수정을 포착하고도 이후 2시간30여분동안행방을 파악하지 못한 점 △고급정보를 지닌 반잠수정을 나포하지 못하고 격침시킨 점 △상륙지점을 찾아내 고첩과의 접선현장을 덮치지 못한 점 △공해상에 떠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작모선의 행방을 찾지 못한 점 등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다.

17일 밤 11시15분께 육군 31사단 여수 임포소초 초병 김태완이병(21)은 소초앞 2㎞ 해상에서 4명이 탄 반잠수정을 발견, 경찰 경비정 2척이 15분만에 현장에 출동해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잠수정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이어 18일 새벽 1시40분께 임포소초 전방 8㎞ 해상에서 공해로 도주하는 장면이 다시 야간감시장비에 포착될 때까지 2시간35분동안 반잠수정은 우리 군의 수색을 따돌린 채 해안에서 모종의 작전을 수행한 셈이다.

이에대해 정영진(丁永振) 합참 작전본부장은 "반잠수정 선체는 수면위 60㎝ 가량만 노출되는데당시 해상에는 2.5m 높이의 파도가 일어 선체가 잘 관측되지 않았다"며 "그믐이어서 무월광인 점도 포착을 어렵게 했다"고 해명했다.

반잠수정을 나포해 승조원들을 생포했더라면 침투목적과 침투전술, 북한군내 동향 등에 대해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1백여㎞를 추격한 끝에 결국 격침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도 무척아쉬운 대목.

반잠수정은 3천5백여발에 달하는 해군 함포사격을 받고 5발의 폭뢰공격까지 받은 뒤 수심 1백10m의 해저에 가라앉아 인양작업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물론 군 당국은 반잠수정 승조원들이 투항을 거부하고 자동화기를 난사하며 저항했고 여차하면잠수해 일본 영해로 달아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밝히고 있고 이같은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상륙지점 발견에 실패하고 고정간첩과의 접선현장을 덮치지 못한데 대해 군 당국은 △야간감시장비만으로는 정확한 상륙지점 포착이 어렵고 △침투조가 상륙한 뒤 아군과 교전이 벌어졌을 때 아군 및 민간인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을 들었다.

군 관계자는 지난 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 침투조의 상륙으로 아군 피해가 컸고 동해안일대가 한동안 혼란에 빠진 점을 들면서 '바다의 적은 바다에서 막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을인용하기도 했다.

끝으로 공작모선의 행방을 찾지 못한 점도 '옥에 티'로 꼽힌다.

북한이 반잠수정을 이용해 침투를 시도할 때는 반드시 공해상에 공작모선이 대기하는 것이 상식이며 공작모선은 고급정보가 가득한 '보물선'으로 간주된다.

이번에 침투한 반잠수정이 여수에서 동남쪽 공해상으로 달아난 것은 공작모선과 접선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해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반잠수정은 우리 해군과 공군의 추격을 받고 있었기때문에 모선과 무리하게 접선해 모선까지 발각되는 위험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공작모선을 찾기 위해 예상되는 해상을 중심으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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