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가는 정동진역 마치 바다로 빨려드는 듯

입력 1998-03-27 14:19:00

IMF 한파로 피곤과 한숨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현실. 훌쩍 떠나 마음이라도 달래고 싶지만 여행한번 가기도 쉽지 않다.

이럴때 적당한 것이 기차여행. 기름값, 교통체증을 염려할 필요가 없어 승용차나 버스여행보다 시간과 비용이 절약된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사진 같은 추억이 있고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풍경을 바라보며 긴 생각에 잠길수 있어 더욱 좋다.

요즘 김밥 두줄 싸가지고 멀리 떠날 수 있는 여행코스로 인기 있는 곳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의정동진역이다. 정동진(正東津)은 서울 광화문의 정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도를펴 놓고 서울에서 동쪽으로 직선을 그으면 바닷가 작은 마을 정동진과 닿는다.정동진역은 해변에서 철길까지 거리가 10m에 불과해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다. 동해의 고즈넉한 해안선과 거의 맞닿아 달리는 철길위 작은 간이역 정동진은 '모래시계' 배경이 된 후 명소로 급부상했다.

학생운동으로 당국의 수배를 받던 혜린(고현정)이 형사들에게 쫓기며 열차를 기다리다 붙잡혀가던 기차역. 이를 지켜보던 소나무와 애처로운 눈빛 너머로 보이던 바다가 인상적인 감동을 남긴곳이다.

대구에서 정동진역을 가려면 잠을 설친후 새벽 5시 45분 동대구 출발 강릉행 무궁화호를 타야 한다. 영천으로 가는 대구선 위에서 엊저녁 준비한 김밥을 먹는것도 재미다. 일정하게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면 어느듯 눈꺼풀이 내려 앉아 스스르 잠이 든다.

떠오른 해가 창문에 부서질때 눈을 뜨면 주마등 처럼 지나가는 바깥 풍경이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흑백으로 변하는 시간 여행이 계속된다.

동대구역을 출발한지 4시간이 지나면 기차는 꾸불꾸불 민족의 줄기 태백준령을 넘는다. 백두대간을 힘차게 오르던 기차는 흥전역과 나한정역사이에서 힘이 달려 갑자기 뒤로 움직인다. 이곳은우리나라 유일의 스위치백 구간으로 기차가 앞뒤로 움직이며 고개를 넘어 색다른 기차여행을 경험 할 수 있다.

푸르름이 묻어나는 준령을 뒤로 하고 동해시로 들어서면 기차는 바다를 끼고 달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바다로 쏠린다. 동대구를 출발 한 후 6시간이 조금 지난 정오쯤 푸른 깃발로 열차를세우는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멋진바다, 모래사장을 산책하다 눈에 들어오는 횟집에서 싱싱한 횟감과 따라 나온 매운탕으로 먹는 점심은 별미다. 여유가 있으면 인근 관광지를 다녀 올 수 있다.

오후 3시15분 동대구행 무궁화를 타면 해가 있을 때는 석양의 아름다움이 주는 기차여행이 또다시 시작된다. 어두워지면 피곤했던 하루를 덜컹이는 객실에서 눈감고 풀어보면 밤 9시50분 기차는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정동진역은 주변 놀이거리가 풍성하지 않다. 그러나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바다와 산, 기찻길의절묘한 조화에 기쁨을 느낀다.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 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고 시인 김영남이 노래한 정동진. 그곳을 다녀오면 확실히 힘이 솟는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연이 주는 건강함 때문일 것이다.

〈李庚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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