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환율폭등세 백약이 무효

입력 1997-12-09 14:24:00

IMF자금이 지원됐음에도 불구하고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달러당 1천3백원을 넘어서자 기업들은 한마디로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달러당 1천2백원선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자금계획을 세웠으나 8일 환율이 1천3백원대를 훌쩍 넘어서는 살인적인 폭등세를 보이자 더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듯이 손을놓고 있다.

일부에서는 달러당 2천원까지 환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마저 대두하면서 각 기업들이 달러 사재기에 한층 열을 올리는 현상도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IMF 보고서에서 나타났듯이 금융기관의 외화부재와 민간 기업의 외화부채 규모가 1천억달러 이상에 달하고 이중 50%%이상이 단기부채라는 점을 감안하면 환율상승은앞으로도 계속되지 않겠느냐"며 "1달러=2천원시대가 결코 먼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국내 대기업 그룹 계열 종합상사들의 경우 그동안에는 은행에서 네고가 안되고 신용장 개설이 안되는 상황에서도 자체 달러자금을 동원해 중소협력업체들에 대한 로컬 결제를 지속해 왔으나 환율이 이처럼 폭등하는 상황에서는 그나마 비축해둔 달러마저 고갈돼 더 이상 결제를 하지 못하는상황까지 몰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종합상사의 한 관계자는 "IMF자금이 일부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현재 국내 은행들이 네고나유산스, 신용장 개설등을 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외화 자금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하루에 원화가 달러당 1백원이상 평가절하되는 상황에서는 한마디로 백약이 무효"라고 털어놓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60억달러에 이르는 외화부채를 감안해 헤징등을 통해 환위험을 피하려 해도헤징할 시장이 없는 것은 물론 환율상승폭이 워낙 크고 빠르다 보니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그냥앉아서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전했다.

LG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달러 비축량을 할당해 달러를 사들이고 있지만 시장에서 달러를 구하는 것도 거의 한계상황에 다다른 것 같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부족한 원화자금을 끌어다가 달러 매입에 사용하자니 그야말로 안팎으로 터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달러 상승세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아래 다양한 대비책을 강구하는 한편 사업계획도 전면 손질하는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민하는 모습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결제통화를 다변화하거나 수입대금을 조기 결제하고 로컬결제를 앞당기는 등의 조치는 환율 9백80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비책들"이라며 "환율이 이처럼 폭등하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해 오던 대책들을 그저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밖에도 수출결제대금을 달러로 보유하고 국산 원자재 사용비중을 높이는등 다각적인 대책을 추진중이지만 환율 상승속도에 비해 턱없이 중·장기적인 대책들이어서 사실상 실효는 크지 않다고털어놓았다.

가까스로 마련해 놓았던 사업계획도 새로운 환율 전망치를 바탕으로 재검토하는 작업이 한창이다.삼성그룹 관계자는 "최종 사업계획 확정시 환율 1천2백~1천3백원대를 기준으로 했었는데 단숨에무용지물이 됐다"면서 "최소한 1천5백원대이상을 전망치로 잡아 새로운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할것 같다"고 말했다.

선경그룹 관계자는 "주력사인 SK의 경우 환율이 1원 오르면 그냥 앉아서 30억원의 환차손을 보게 돼 있다"면서 "손익 계획은 물론 사업 계획을 전면 재수정 해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환율 전망치를 산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하다"고 말했다.

〈매일경제=본사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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