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레지스탕스 언더그라운드

입력 1997-09-25 14:17:00

"록 클럽 '짚시락'"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웬지 비밀스럽다. '밝고 건강한 사회'를 지키려는 지상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경계의 대상. 언더그라운드에서 꽃피는 문화에 대해 사람들은 '저항음악', '반사회적'이라는 꼬리표를 단다. 과연 그럴까?

상업주의가 양산하는 주류문화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클럽'이라는 해방구를 만들었다. 철저하게 마니아들만을 위한 음악. 언더 밴드들은 그 '소수'를 위해 누구보다 크게 노래한다. '헤비','짚시락', '모리슨'. 초창기지만 대구에도 클럽 문화가 존재한다. 이들이 활화산처럼 내뿜는 열기에 지상이 들썩인다.

23일 오후8시. 계대앞의 록 클럽 '짚시락'에서는 작은 공연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강희숙 종합노래밴드'입니다"

4명의 남자 멤버들 가운데 '강희숙'이란 이름은 없다. 경북대 주변에서 활약하는 '강희숙'이란 여가수가 '그냥 좋아서' 붙인 이름. '황신혜 밴드'가 탤런트 황신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과같은 맥락이다. "'종합선물세트' 뚜껑을 열면 별별 것이 다 들었잖아요? 그처럼 푸짐한 즐거움을선사하는 밴드라는 뜻에서 '종합노래밴드'라고 지었어요" 보컬을 맡은 정진우군(21)의 설명.말 그대로 '종합선물세트'같은 노래들이 무대에 올랐다. '1918', '월하의 공동묘지', '수렁에서 건진 마이 달링', '미친 택시' 등 밴드의 자작곡과 산울림의 곡 '개구장이', 영국의 펑크 그룹 '섹스피스톨즈'의 'Anarchy in the U.K'에 이르기까지. "…이제 나를 생각하는 날-, 이제 나만 생각하는 날-…" 입으로는 가사를 쏟아내지만 줄곧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표정은 이렇게 노래하는것같다. "노래는, 인생은 즐거운 거예요"

'짚시락'의 주인 허성찬씨(29) 역시 '짚시'라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친다. 직장생활을 위해 흩어져있는 멤버들은 1년에 단 하루, '짚시의 겨울 하루' 콘서트 때만 뭉친다. '클럽문화'가 주는 신선함, 대학이라는 주변 환경 덕택에 '짚시락'은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편이다.21일 오후 8시 동아쇼핑센터 아트홀에서도 또다른 록클럽 '헤비(Heavy)'가 주최하는 헤비메탈 콘서트가 열렸다. 입장을 기다리던 젊은 관객들은 공연시작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사두'는 제일 뒤에 출연한데" 일단 무대가 열리면 콘서트장 내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호출기와 휴대전화를 끄는 사람도 없다. 여느 때 같으면 계대 네거리 경북공고 맞은편에 있는 클럽 '헤비'에서 무대가 마련됐겠지만 이날은 서울과 포항의 밴드까지 불러모은 모처럼만의 대형무대. 1백50여명의관객들이 '일단' 의자에 앉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스피커를 통해 나온 드럼소리가 가슴 속으로 들린다. 맥박을 리드하며 심장을 때리는 타악기. 하나둘씩 관객들은 무대 앞으로 떠밀린다. 찌익-하고 귀를 거스르는 스피커의하울링(howling)과 구별도 되지 않는 기타의 고음이 귀를 난도질할 때, 청중들은 열광한다.록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리에만 앉아있는 법이 없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을 '춤'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춤을 춘다. 그러나 디스코텍에서 보는 세련된 몸동작과는 거리가 멀다. 발을 모아 겅중겅중 뛰고 한 팔을 허공에 휘젓거나 농악대가 상모를 돌리듯 머리를 빙빙 돌리는 '헤드 뱅잉'(Head Banging)이 전부.

"여기도 물 좀 주소-" 밴드가 연주 사이사이 생수로 목을 축이면 여기저기서 물 좀 던져달라고아우성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들은 자유에 대한 갈증을 푼다. 내밀한 감정의 직설적인 발산.전자기타와 앰프, 비록 기술문명의 힘을 빌렸지만 이들의 음악, 이들의 춤에서 원시적인 냄새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대 앞으로 뛰어나간 아이를 찾는 어머니의 걱정스런 표정이 그 '원시성'을 이해 못하듯 그들 역시 기성세대의 '가식'을 이해하기 싫어한다.

"우리나라 관청은 아직도 '술집' 아니면 '나이트클럽'으로만 분류할 줄 알아요. 도대체 '클럽'이어떤 곳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TV프로그램을 통해 비교적 널리 알려진 클럽 '모리슨'의 이원재사장(32). 그는 언더그라운드가 떳떳한 문화공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국내에서 클럽 경영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클럽 문화'에 대한 소비자층도 아직까지는 두텁지 못하다. 지난해7월 '모리슨'이 문을 열기 전, 이씨가 외국인전용 클럽을 운영했던 탓에 아직도 공연때마다 외국인 관객이 80%% 이상. 자리를 꿰차고 앉은 이방인들에게 기가 질려 못들어오는 국내 관객이 많다.

펑크와 블루스음악을 지향하는 '짚시락', 데스메탈 전문 '헤비', 댄스음악만 아니라면 어떤 록음악도 좋다는 '모리슨'. 3개 클럽의 색깔이 너무 뚜렷하고 음악관에서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어아직까지는 합동공연 등 공동작업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클럽 문화가 앞서 자리잡은서울 신촌과 홍익대 주변의 클럽들이 '개클련(개방적인 클럽 연대)'이라는 조직을 결성, '언더그라운드에서 뿌리 내리기'를 고민하고 있는 것은 좋은 본보기다.

'언더그라운드'라는 특성 때문에 클럽문화는 주류 문화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언제나 문화의 최전방에서 다양한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언더그라운드는 잎과 열매를 살찌우는기름진 토양임에 틀림없다.

▨클럽 공연 안내

◇'모리슨'(지산동 지산1단지 맞은편. 783-4010)

28일(일) 오후 4시-'블랙 홀'

10월 11일(토) 밤 9시30분-'사두'

10월 25일(토) 밤 9시30분-'토이 박스'

◇'헤비'(계대 네거리 경북공고 맞은편. 253-8634)

28일(일) 오후 7시-'오딘'

10월중 '황신혜 밴드' '크라잉 넛' '누드스탁 슈퍼사이트' '올드 키드' 주말 공연, '블루 아이즈' '비호' '바나나특공대' '에디' '레모네이즈' 목요일 공연 예정이나 날짜 미정.

◇'짚시락'(계대 정문 앞 주차장 오른쪽 골목 끝. 629-9692)

10월 공연계획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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