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세풍'-이상한 선거

입력 1997-09-25 14:40:00

"김찬석 논설위원"

우리는 지금 참으로 이상한 대선전(大選戰)을 치르고 있다.

남의 나라처럼 정치 축제가 아니라 대선전을 빌미로 집권 여당이 분열되고 정계 개편이 논의될만큼 혼돈의 연속이니 이처럼 기이한 대통령 선거가 또 어디 있을까 싶은 것이다.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상대후보를 헐뜯는 비방은 무성하되 대통령 선거전다운 정책제시는 별로인채 파행으로 시작되는게 이상하다 싶더니 그나마 며칠 안가 당을 쪼갠다느니 정치구조를 개편해야 된다느니 법석이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명색이 집권 여당이라면 대선전이 한창 어우러지고 있어야할 지금쯤 민족의 미래를 열어나갈 정책을 제시 해야하고 또 불황으로 헤매고 있는 근로자를 어루만져야 할일이다. 그런데도 지금껏변변한 선거운동 한번 해보지 않은채 몇차례의 여론조사만으로 인기가 낮은 이회창(李會昌)대표를 갈아치워야 한다느니 당을 쪼개고 갈라서자느니하는 것은 당인(黨人)으로서 할일이 아니라는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신한국당은 영원히 여당만 해야되고 정권을 뺏길처지라면 판을 뒤엎겠다는 것인지 상식으로는 이해키 어려운 일이 축제가 돼야할 선거판에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여당이 야당을 할 수도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현실 자체가 우리 정치에 대한 적신호이기에 걱정인 것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이번 선거만큼 TV출연과 여론조사가 선거전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전례가없거니와 여야가 모두 조사결과에 시종일관 얽매여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는 것도 기이한 현상 아닐까.

일부 대선후보들은 얼마든지 바뀔수도 있는 여론조사를 과신한 나머지 어제까지의 약속을 팽개쳐버려도 "국민 여망에 따라…"출마했다면 여전히 환호받으리라 착각하고 있고 대통령 중심제→내각책임제 사이를 밥먹듯 왔다갔다해도 여전히 "임자 표는 내꺼여"라고 믿고 있는 듯도 하다.그들은 합종연횡으로 세(勢)를 얻는데만 연연했지 국민들이 "저 사람 믿어도 될까"라며 따갑게 바라보는 눈길은 의식조차 못하는게 아닌지 모를 일이다.

나도 물론 요즘같은 정보화 시대의 선거전에서 여론조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하지만 처음에 다소 인기도가 떨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뛰어서 역전승한 경우도 적지 않은만큼우리모두 모처럼 활짝 열린 이번 선거에서 제세의 경륜을 사자후로 토해내는 '멋진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식의 수박 겉핥기식 여론조사 결과에 질려 누구는 판을깨겠다 하고 또 한편에서는 아무 준비도 않았다가 인기가 좋다는 여론만 믿고 출마하는 모습 양쪽 모두가 우리가 기대하는 '확신에 차고 당당한' 지도자의 자세는 아닌것 같아 실망스럽다.어쨌든 이번 재선 후보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절대 강자가 없이 모두가 경력에 흠결사항을 갖고있거나 또는 조직이나 경륜에서 약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판은 비록 지금은 높은 지지도를 유지해도 선거바람이 선뜻 한번 잘못 불면 풍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변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각당 후보들은 높은 경륜으로 민심을 모으기에 앞서 선거를 불과 80여일 남긴 현시점에서 개헌이나 아니면 합종연횡으로 정계를 개편, 세력권을 넓히려는 꼼수에만 골몰하니 기가찬다.

이야말로 입학시험장에 들어간 수험생이 "시험문제가 어려우니 쉬운 문제를 재출제하거나 시험방법을 바꾸자"하는 말과 꼭같다. 꼭 필요하다면 진작 개헌을 추진하거나 정계개편을 매듭지을 노릇이지 실컷 북치고 장구치고 하다 민심이 안따르니까 "그렇다면 정치구도를 바꾸어서라도…"하고 나서니 이게 어디 제마음대로 하는 엿장수 가위인가 싶어 하는 소리다.

이상하게 시작된 선거는 지금 여당을 붕괴 위기로, 야당 또한 정계 개편이란 비상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권 최대의 이벤트가 자칫 파국과 분열로 치달을 수도 있는위기로 바뀌고 있는 현실을 참담한 심경으로 지켜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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