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기적 끝나는가

입력 1997-09-25 00:00:00

동아시아에서 기고만장하던 용(龍)들이 요즘 크게 비틀거리고 있다.

한국과 함께 '동남아의 기적'을 주도해온 홍콩,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 있어서 지난여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러잖아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이들 나라에 지난7월 태국의 변동환율제실시는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통화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탈출구도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환난에서 벗어난 나라는 싱가포르와 대만정도. 세계의 이목은 동남아 기적의 종말여부에 관심이 쏠려있다.

일본을 뒤따라 기적을 이룩한 한국은 안타깝게도 일본이 10년전 겪었던 '거품경제'불황을 그대로겪고있다고 외신은 분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는 냉전종식후 10년도 채안돼 성숙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쓴맛과 함께 불황 도미노현상에 빠져있다.

세계경제학자들은 현재의 위기를 태풍에 비유하고 있다. 한국에서 시작한 태풍이 태국까지 휘몰아쳐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이들이 지나간 뒤에는 또다시 파란 하늘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곧 동남아 국가들의 핵심경제지표가 상당히 건전하다는 얘기다. 높은 저축률, 근면성, 통화폭락으로 인한 엄청난 잠재노동력, 건전한 재정정책 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허덕이는 용들에게 서방세계는 정확하게 그 원인을 제시하고있다.

먼저 이러한 요인이 '자만'으로 연결돼 오히려 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충고한다. 그 속에 있는순환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태국의 경우 경기과열뒤에 따라오는 일시적 불황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순환적인 불황이 보호장벽, 비능률등 구조적인 요인에 의해 그 정도가 크게 악화됐다는 것이다. 특히 두 나라는 현재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곳. 태국은 용차이윳 총리가 경제실패로 실각위기에 있으며 한국은 비합리적이고 권력유착적인 은행제도가 정치구조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고 보고있다.

그러면 부동산 가격폭락, 증시붕괴, 신용추락, 취업난, 소비위축등으로 대표되는 거품경제를 일본은 어떻게 극복했는가. 일본은 당장 개혁에 착수했다. 그 개혁은 성공을 거두어 불과 5년만에 불황의 터널을 벗어났다. 지금 한국은 과거 일본과 똑같은 위기에 처해있다. 문제는 당시 일본과 달리 한국은 개혁에 착수할 자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금융제도도 위험한 수준에 와있고 태국은 이미 손쓸수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이는 바로 수출 드라이브정책을 펴온 개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고있는 아픔이다. MIT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만은 정부주도하에 이루어지는 동남아국가들의 과감한 투자를 근육강화제인 스테로이드에 비유, "과다한 스테로이드 투여가 동남아 기적의 원동력이었다"며 지금 동남아는 약효가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 동남아의 기적은 끝났는가. 낙관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않는다. 현재를 위기로 생각하고 △숙련노동자를 양산하고 △부패를 줄이고 △개방폭을 확대하고 △좀더 엄격하게 사회질서를지켜나간다면 반드시 '제2의 기적'이 도래할것이라고 충고하고있다.

〈尹柱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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