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참꽃제로 "폐허화"

입력 1997-04-02 15:29:00

"잘린 소나무·산길… 깨진 기암괴석…"

달성군 비슬산은 망가질대로 망가져 파괴된 생태계가 회생 불능상태에 빠져 있었다. 해발1천84m대견사지(大見寺址) 입구까지 닦여진 폭 3m 연장 5.7km 도로가 비슬산의 생태계를 상하 좌우로잘라 버렸다. 자연휴양림을 거쳐 비슬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뿌리째 뽑힌 소나무, 깨진 기암괴석이 곳곳에 나뒹굴어 한마디로 '짜증 길'이었다.

본사 취재팀이 영남자연생태보존회 유승원회장(50·생태학 박사) 정제영총무와 비슬산악회 곽병일씨(38)와 동행 취재한 1일에도 달성군은 중장비 3대를 동원해 계속 파괴중이었다.계곡을 막아 사방댐을 만들고 도로를 보수하는 굴삭기와 불도저의 굉음은 요란했다.유승원회장은 과거 좁은 산길이 대로로 변했고 길가에 배수구를 만드느라 콘크리트벽을 쌓아놓는모습을 보고 "더이상 할말이 없다"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무너져 내린 흙에 묻힌 나무와 풀, 바위에 껍질이 벗겨진 소나무, 잘려진 활엽수, 길에 내팽개쳐진 토관·합판·기름통등 공사 잔해들, 도로 절개지에서는 참꽃 소나무 신갈나무등의 뿌리가 훤히 보이고, 마사토는 두런거리는 사람 말소리에도 못견뎌 흘러내렸다. 2억8천만원을 들였다는 길도 부실하기 짝이 없어 큰 비가 오면 바위사태가 날 위험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미 패어 망가진 곳도 있었다.

도로 왼쪽 아래 5m 쯤에 미륵불이 있지만 공사잔해들로 길이 막혔고 표지판조차 없어 불자(佛子)의 발길도 끊겨버렸다.

현풍이 고향인 곽병일씨는 "이 길은 어릴때 등산을 하며 다래를 따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회상하며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면 온갖 잡념을 잊을 수 있었는데…"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참꽃 수백만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산 정상 30만평에서는 각종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부 10여명이 나무를 자르고 길을 내 참꽃제 주무대를 만드느라 바빴다.

비슬산 참꽃제는 소백산 철쭉제를 모방한 것. 그러나 철쭉제로 자연이 심하게 훼손되자 철쭉제장소를 산정상에서 죽령으로 옮긴 사실을 달성군은 모르는 듯했다. 유승원회장은 "이같이 무지막지한 파괴가 합법적이라니 기가 막힌다"며 "더이상의 파괴를 막도록 시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崔在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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