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도시의 푸른나무 아우라지의 희망

입력 1995-12-23 08:00:00

"아이구, 무서워라. 우린 제발 노망 안 들고 중풍 안 걸리고, 그저 자는잠에서 죽었으면. 그 꼴이웃에 보이고 어떻게 살아. 늙으면 자식도 안쳐다보는데 중풍 걸린 어미를 어느 자식이 수발들어줘. 함께 살지도 않는데"길례댁이 치를 떤다. 묵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창규엄마가 내게, 먹으라며 홍시 하나를 준다.말랑하게 잘 익은 홍시다. 나는 홍시를 먹는다."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어떤 꼴이 될 때 저승차사가 불러가려는지 아무도 몰라"

길례댁이 말한다.

"양지말 두독댁이 혈압으로 쓰러져 풍이 왔데요. 구십된 시어머니를 십수년 똥오줌 받아내며 고생했는데 이제 장본인마저 기동을 못하게 됐으니, 쯔쯔. 자식들은 다 고향 떠나사니 송장된 두 노친네 앞길이 막막하답디다. 연락이 되서 큰아들 둘째아들이 내려왔는데 아무도 모셔갈 뜻이 없었대요. 동네 어른들이 거둬달라며 이장한테 돈을 얼마 내놓고 도망치듯 가버렸다우"도담댁이 말한다. 방안 사람들이 연방 혀를 찬다.

"가축보다 못한 처리란게 그를 두고 하는 말이오. 산송장과 다를바가 없지. 그렇다고 예전처럼 고려장을 시킬수도 없구"

한서방이 말한다.

"우리 처지도 남의 일이 아니라요. 시우 할머니 꼴 안 되라는 법이 어딨어요. 그래도 시우 할머닌 정신 멀쩡할 때도 있잖아요. 이제 덩실한 시우가왔으니 자식들 떠나 버린 우리 처지보다 낫게 됐어. 시우가 효손 노릇할테니"

창규 어머니 말에 모두 나를 본다. "시우야, 이제 할머니 잘 모셔" "시우는 착한 청년이라 정말 할머니 잘 모실거야" "새옹지마라더니, 시우야말로 늦깍이다"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나는 부끄럽다. 경주씨는 말없이 나를 보고 웃는다. 들고 있던 홍시를 바구니에 놓는다. 자세를 고친다. 옆으로 접었던 무릎을 꿇어 앉는다."양로원에 갈 처지도 못되니 싸리골 우리들은 더욱 뭉쳐 한 가족으로 살아야 해요. 아픈 사람 서로 돌봐주고, 앞으로도 네 것 내 것 없이 삽시다그려"

윤이장이 말한다.

"맞는 말씀이에요" 경주씨가나선다. "우리나라는 아직 노인 복지대책이 후진국 수준입니다. 여기 북면만 해두 공공 노인복지 시설이 한군데도 없더군요. 도시의형편 나은 노인들은 실버타운이란 사설 고급 양로원에라도들어간다지만, 그게 언제 전 국민화 수준에 이르겠어요. 더욱 노인들만 남은농촌 현실은 정말 딱합니다. 농촌 인구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니깐요. 의료혜택은 물론, 기동 못하는 노인들을 누가 보살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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