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국회결의 합의배경-연정와해 우려 자민 백기

입력 1995-06-07 08:00:00

일본 연립여당이 6일밤 국회결의 문안에 극적으로 합의한 배경은, 연립정권붕괴를 막겠다는 절박한 인식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각국의 따가운 시선을더 이상 피할수 없다는 국제적 상황에 겨우 눈을 돌린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특히 논란의 와중에 돌출한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의 발언파문은자민당의 양보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연립3당의 이른바 '전후 50년 프로젝트팀'이 절충에 실패함에 따라 열린 간사장·서기장급 회담은 그동안 3당이 내놓았던 결의문안을 모두 백지화, 완전히 새로운 문안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자민당이 당내의 결의반대파 불만으로 당론결정에 진통을 겪었으나 당수뇌부가 이를 설득해 대폭 양보쪽으로 몰고갔다. 자민당의 이같은 양보자세가 이날 합의를 가능케 했다고 볼수 있다.사회당도 당초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와 '중국에 대한 침략', 그리고 '종군위안부등 강제연행과 사죄'등을 내용에 담아야한다고 주장했던데서 크게 양보,구체적인 국명과 사실을제외한다는 데 동의함으로써 이날 연립여당의 합의안이 이루어졌다.과거인식의 뚜렷한 차이를 보인 연립내 양측의 이같은 합의는, 당장 합의에이르지못해 국회결의가 불발될 경우 연립정권 자체가 와해될 것이라는 공통의위기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념전환으로 존재의미에 회의를 품는 유권자가급증, 존폐기로에 처한 사회당은 위원장인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불발시 중대결의'를 흘려 연립이탈 불사를 밝히는등, 국회결의에 당존립의미를 부여할 정도의 집착을 갖고있다. 자민당으로서도 '무당파 돌풍'이 뻔한 상황에서 당장 연립와해에 따른 중의원해산과 총선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 연립유지에 최우선했다고 볼수 있다.

이같은 정권사정에 국제적 시선, 특히 한국과 중국등 아시아각국의 뜨거운관심이 자민당의 양보를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한국측은 말할 것 없고, 중국정부도 최근들어 '군국주의 세력이 있다'고 경계를 표시하는등 국회결의 문제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해왔다.

이런 와중에 돌출한 자민당 중진 와타나베 전부총리 겸 외상의 '한국병합 합법, 식민지배 부인'발언은 불난데 부채질을 하듯, 사태를 크게 악화시켜 '과거인식에 무딘'자민당을 압박했다. 한국쪽의 맹반발을 보고, 국회결의가 안될 경우의 험악해질 아시아각국의 표정을 읽은 셈이다. 결국 와타나베는 자민당 양보로 3당간 합의와 국회결의를 가능케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는 역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합의안내용은 일정한 평가가 가능하다해도, 여전히 일본자신의 책임과 과거에 대해 가급적 발을 빼는 일반적 표현으로 만들었음을 부인못한다. 침략과 식민지지배가 일본만의 행위가 아닌, 전세계적 조류였다는 인식을 배경에깔고있음은 전세계의 전몰자를 추도한다고 들고나온 데서 명확하다.또 사죄가 아닌 반성표명에 그친 것도 역대총리들이 밝힌 내용과 동일선상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역사인식의 재정리'라기 보다는 정권유지를 목적으로마지못해 시도한 3당간 '타협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정확하다는 지적도 그래서나온다.

더욱이 이번 3당간 절충과정에서 명확해진 자민당의 역사인식, 특히 둘로 뚜렷이 구분된 침략인정파와 침략합법파의 대립은 향후 얼마든지 재등장할 것이라는 점에서 전후50년에 즈음한 국회결의가 진정한 의미를 부여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도쿄·김종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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