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서울의 친척집에 놀러갔다가 친척 형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두가지 내용인데 '대구는 시골'이란 것과 '만약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않았더라면 국토가 더 넓어졌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시골'운운에 대해서는강하게 반발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시골'의 이분법이 서울 지역 이외에서는 별반 큰 위력(?)을 발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나 '신라' 운운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잃어버린 고토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 중의 하나는 화랑도이다.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국토의 동남쪽에 치우쳐 문화적으로 후진에 처해있던 신라가 민족통일의 대업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의 '시골적'이념으로 무장된 강력한 무사집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전무퇴, 아군의 사기를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졌던 그들은, 고구려나 백제 쪽에서 본다면 영락없는 '시골무사'들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시골무사'들이 자칭'서울무사'들을 패퇴시키고 새로운 '서울무사'가 되었다. 이를테면, 신라의삼국통일은 그 때까지의 '서울/시골'의 경계를 해체한 것이었다. 그뒤로도'서울/시골'의 이분법은 끊임없이 기존의 경계가 해체되는 과정을 밟아왔다.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이들은 예외없이 모두 '시골무사'출신들이었고, 괄목할만한 문화적인 업적은 거의 '시골선비'들에 의해서 창출되었다.'시골'은 기존의 '서울'이 활력을 다하여 새로운 '서울'을 요구할 때, 기꺼이 입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참다운 '시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 당시 참다운 '시골'은 오직 신라뿐이었기 때문이다.양선규(소설가·대구교대부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