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이승만 조명

입력 1995-02-20 00:00:00

예술의 전당 미술관1, 2층에는 이승만전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전시되고 있다.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1965년 하와이에서 망명중 서거하기까지 90년간의 생애전은 당시와는 국내외적 상황이 판이하게 다른 오늘을 살고 있는후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당시의 시대적 환경은 1880년대 구미열강의 개국요구와 압력이 가중되고, 개화파와 수구파로 나눠진 정치엘리트들의 대립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개화파 쿠데타인 갑신정변이 발발한 때는 이승만이 10세가 되던 해였다.태종의 장자인 양녕대군의 후예로서 몰락한 양반귀족가문을 의식한 소년 이승만은 과거에 6년간이나 응시했으나 계속 낙방이후 배재학당을 거쳐 서재필과 독립협회를 결성, 대중조직을 선동하다가 체포돼 종신형을 받고 1898년 7년간 옥살이를 했다.

1904년 출옥후 민영환, 한규설의 부탁을 받고 미국으로 가서 조선이 일본에합병기미가 보이자 귀국하지 않고 조지 워싱턴(학사), 하버드(석사), 프린스턴대(박사)에서 국제정치의 중립국관계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흔히 이승만을 친미사대주의자, 외교귀신, 내정백치라는 말들을 하나, 그는 한민족의이익을 위해 미국을 이용한 자기중심주의적 사고의 국제주의자였다.73세의 노구로 대통령이 된 그로서는, 신생국정치 행정을 습득하기에는 정신적, 지적으로 너무 뇌쇠해 있었다. 전근대적 권위주의와 마키아벨리즘을 실천한 한 지도자의 생애전이 역사의 단절이 아닌, 발전적 계승의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아울러 다양한 볼거리가 대구에서도 개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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