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녀침몰 765명사망에 에스토니아호

입력 1995-02-09 12:03:00

지난해 9월28일 침몰한 에스토니아호에서는 '노약자 먼저 구출하라'는 '타이타닉호의 전설'이 재현되지 않았다.배가 전복돼 차디찬 발트해의 바닷물이 밀려드는 가운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남성에게 유리했다. 모든 승객들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녘, 옷도 챙겨 입을 시간도 없이 35분만에 발트해의 심연으로 사라진 에스토니아호에서 탈출한 생존자는 탑승객 9백96명중 1백37명. 이중 여성은 불과 26명이었다. 구조대원들이 얼음조각과 구명보트에서 건져올린 사체 94구도 대부분 남성들이었으며 생존자들의 연령도 20세에서 44세까지로 강자만이 살아남을수 있는'동물의 법칙'이 에스토니아호에 그대로 적용됐다. 에스토니아호 사고조사위원회는 7일 대부분의 남성들이 여성과 노약자를 제치고 탈출했다는 여성생존자들의 주장을 확인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생존자들과 희생자들의 가족들을대상으로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스웨덴,에스토니아,핀란드의 합동사고조사위원회는 이날 중간발표를 통해 사고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이날 발표한 사고당시 상황은 여성들에게 절대 불리했다. 차량들이 실려있는선두갑판으로 물이 밀려들면서 배가 뒤집히고 승객들이 선실에서 뛰어나왔을때 바닥과 천장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여기서 탈출할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계단뿐. 그러나 계단까지 가기 위해서는 철제난간에 매달려 몇m를 가야하는데 여성과 노약자에게는 무리였다.

여기다 배가 너무나 빨리 침몰해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에 거의 미쳐있었다.밀려드는 물살에 휩쓸리면서 살려달라는 비명만 가득한 가운데 여성과 아이들은 점차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몇몇 남성들만 철제난간을 통해 에스토니아호를 빠져나올수 있었던 것이다. 조사위원회의 핀랜드측 카리 레톨라위원은"에스토니아호가 워낙 빨리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갔기 때문에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이후 선박사고의 금언이 된 노약자 우선구출이 지켜지지 않았다"고밝혔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이날 1백86명의 승무원중 43명만이 생존한 사실을 밝히며대부분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구출하지 않고 탈출했다는 언론의 보도를 부인했다. 아직까지 사고당시 정확한 승객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조사위원회는 9백96명이으로 잠정 집계하고 있다. 생존자와 확인된 사망자수를 제하면 7백65명이 에스토니아호에 갇힌채 바닷속에 가라앉았으며 이들중 여성이 4백22명, 아이들은 23명이었다.

최종 보고서는 올해 가을쯤 나올것이라고 조사위원회는 밝혔다.〈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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