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악성-우리는 누구를 따라 배워야 하나

입력 1995-02-09 08:00:00

요즘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인 미국과 정면으로 맞붙어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거대한 몸집과 겁없는 배짱과는 어울리지 않게 초라한 그러나 매우 중국인다운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이른바 한수윈(한소운)을 따라 배우자 는 학습운동. 우리의 세계화 같이 거창한 이름이 아니다.

그저 한수윈이란 산동성 구석진 농촌의 초라한 부녀자를 12억 인구가 따라배우자는 일종의 의식개혁운동이다.

10년째 직업군인인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병든 시할머니와 딸린 가족들을 뒷바라지 하며 고생고생 농촌을 지키고 있는 시골 주부의 삶을 본받자는, 어떻게 보면 시답잖은 이야깃거리 일텐데 한여자의 삶의 모델을 국민운동 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첫딸아이의 이름을 쿤난(곤난)으로 지었을만큼 생활이 곤란 했었지만 농촌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시골 주부의 삶을 통해 파괴되어 가는 효(효)사상과 이농현상을 막아보자는 사회주의국가다운 의도 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시대상황에 필요한 대리영웅(대리영웅)을 만들어 대중과 인민의 의식과 이념을 한곳으로 몰아 끌고가는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영웅만들기는 가끔씩 역사속에서 있어왔다. 모택동도 1963년 레이펑(뇌봉)을 따라 배우자 는 학습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요령성 주둔 공병부대의 분대장이었던 레이펑을 동지애와 봉사정신이 뛰어난직업군인으로 묘사했다.

그의 학습교재에는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기차나 버스에서는 노약자를 우대한다는 교훈적인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획일적 사고를 통제시키는 통치의도가 있기도 했겠지만 비정치적인 인간교육요소도 없지 않았던지 훗날 모택동은 "이 운동으로 우리는 좋은 전통을 다시 회복했다"고 회고한바 있다.

만들어낸 대리영웅이든 실체가 있는 실존의 사실이든 국민들의 올바른 의식개혁을 위한 모범적인 모델이 있다는 것은 나쁠 것 없다.

더구나 전국민이 제시된 모범모델을 따르고 배우고 닮으려 노력하고 있다면더더욱 좋은 일이다.

사회주의국가의 정치적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우리 역시 6.25때 백마고지 전투를 소재로 한 김만술 소위라는 국민적 영웅이 있었고 이승복이란 어린이를통해 반공교육의 모범적인 인물로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나치의 블루 맥스 도 뛰어난 탑건 을 대리영웅으로 만들어 연합군에게기가 죽어가는 조종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린 사례다.

게오르규의 소설 25시 에 등장하는 병사 요한 모리츠 역시 대리영웅의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조작되지 않고 정치권력의 목적을 감춘 선동적인 대리영웅 만들기가아니라면 그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상(상)의 따라 배우기 는 의외로 효과적일 수 있다.

국가마다 그러한 따라 배우기 의 인물들을 상징시킬때 화폐에 그 인물의초상을 그려넣는 방법도 쓴다.

달러 지폐에 조지워싱턴이 그려져 있는 것이나 세종대왕을 그려넣은 우리돈은 국민적 영웅이나 위대한 인간상의 모델을 생활속에 상징시킴으로써 잠재적인 따라 배우기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요소도 없지 않은 것이다.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밑에 사람 없다 는 명언을 남긴 일본 명치시대의계몽사상가 후쿠사와 유기치 도 일본의 만원권 지폐의 인물이다.도쿠가와 보다는 명치유신과 함께 개혁세대의 일본 국민들이 따라배워야 할인물로서 더 높이 평가하고 선택한 인물이 자유 평등사상을 가진 계몽사상가라는데에는 그시대 나름의 가치관을 읽게 한다.

중국이 한수윈이란 보잘것 없는 시골 농촌 부녀자를 따라 배우는 인물로 끌어낸 것은 지금의 중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국민적 가치가 깨져가는 효(효)사상의 보호와 개방물결로 급증할 이농현상을 막고 농촌을 살리는데 있다고 봐야 한다. 설사 한수윈이 만들어진 대리영웅이라해도 절실히 필요하다면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국지도부의 현실감각을 매도할 것도 못된다.오히려 우리가 더 관심과 우려를 가져야 할 것은 우리는 과연 누구를 따라배워야 할 것인가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우리가 따라 배울만한 대리영웅은 어디에 있고 어떤 인간상이어야 하나. 아무리 돌아봐도 화폐에 그려넣을 만한 인물, 따라 배워볼만한 인간상이보이질 않는다.

장삼이사 너도나도 당대표감에다 자치단체장 출마예상자라 자칭하는 인물들은 많은데 막상 따라 배울 인물은 없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따라 배워야 하나. 우리의 아이들은 더더욱 따라 배울어른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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