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의 역사인식 한계

입력 1995-02-02 00:00:00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총리의 첫 발언은 진실이었으며 정당했다. 그러나 일본내 보수세력들의 제동에 걸려 발언을 번복한 것은 진실성이 결여된 떳떳지못한 행동이었다.무라야마총리는 지난달 30일 사석이 아닌 국회예산위에서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할돼 있어 지금과 같은 불행한 상태에 있는데 대해서는 역시 일본국민으로서 역사적 책임이 얼마간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떤 일이 있다하더라도 한반도의 분쟁상태는 절대로 남겨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것은 무라야마총리의 역사인식이었으며 솔직한 진실고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이날 저녁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분단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었고 "이같은 불행한 상태가 된데는 일본에도 책임이 있다"고 국회발언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일본외무성은 "총리의 국회 발언은 정부내에서 충분히 검토한 결과가 아니며 한반도분단에 법적책임은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이라고 총리와는 상반된 주장을 폈다. 무라야마총리의 진실이 일본내 보수수구세력들의 위장된 차양막에 가려지자 총리도 할수없이 "어제의 발언은 과거식민지 지배가 역사적으로 초래한 지금까지의 경위에 있어서의 책임이다. 남북은 일본정부가 분할한 것이 아니며 전승국과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분단의 책임은 일본에 없음을 명확히 해둔다"며 첫발언을 번복해 버렸다.

이를 두고 볼때 침략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통석의 념'으로 얼버무리는일본천황이나 분단의 책임유무를 이틀사이에 뒤집어 엎고도 시치미를 떼고있는 총리나 모두 한치의 차이도 없음을 알수 있다. 이는 일본이 전후 50년을 맞아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려는 대국적 풍모와는 전혀 다른모습이며 한가지 일에 내린 긍정을 부정함으로써 스스로가 대외적으로 신뢰할수 없는 나라임을 입증한 셈이다. 일본 외무성은 한술 더떠 "남북분단은미국과 공산주의 세력간의 역학관계속에서 생긴 것으로 일본에는 책임이 없다"면서 "전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기본조약에도 식민지 지배가 남북분단을 초래했다는 내용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천황과 총리와 외무성의 이같은 억지주장과 행동은 한마디로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이 아주 모자라거나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말한다.동경대 와다 하루키교수는 "한국을 전쟁에 끌고 들어가 일본은 분할점령당하지 않은채 한국만을 전승자의 분할에 맡겼으므로 분단의 역사적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정치학자인 김정문청삼대교수는 "일본이 그때 그때 속임수를 쓰는 외교.정치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면 이같은 번복은 영원히 계속돼야 한다"며 "미래지향의 한일관계는 낙관할수 없다"고 말하고있다. 일본도 이제는 대국답게 구차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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