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화제-84년 {신암동 간첩사건} 피해자 탁순애씨

입력 1994-12-24 08:00:00

[이젠 다들 10년전 대구 신암동 무장간첩사건을 잊어버렸겠죠. 저도 그렇게잊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지난 84년9월 자신이 경영하던 미용실에 뛰어든 무장간첩이 쏜 권총탄환세발을 맞고 쓰러졌던 미혼의 탁순애씨(34.수성구 범어1동). 남북경협의 물결로 경제인방북이 러시를 이룰 정도로 변한 지금도 탁씨는 간첩이 쏜 탄환의상흔을 안고 하반신불구로 세상사람들의 기억저편에 살고 있다.[그날 이후 3-4년동안은 지나가는 사람들 말소리만 듣고도 사시나무 떨듯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담담하게 그날을 얘기할 수 있는 걸 보면 세월이 제법흐른 모양입니다]

영천이 고향인 탁씨는 동구 신암동 {백합미용실} 주인이 된지 6개월만에 대낮 도심 무장간첩난동이라는 날벼락을 맞았던 것. 그때가 스물네살이었다.[미장원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손님에게 앉으라고 권하는데 총알이 날아와 오른쪽가슴에 박혔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간첩은 이미 부근 식당에서총을 마구 쏴, 2명을 죽이고 미장원으로 들어오는 길이었어요]탁씨를 쏜 간첩은 곧바로 극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탁씨는 이후꼬박 3년을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보상은커녕 온가족이 간첩이 아닌가하는당국의 의심에 찬 눈초리는 탁씨를 더욱 괴롭혔다. 그럼에도 5공의 서슬퍼런시절 그 흔한 탄원서 한장 써보지 못하고 10년세월을 보냈다.이후 탁씨의 세상은 한평 남짓한 방 한칸이 전부가 됐다. 고향에 부모형제가 있지만 넉넉지않은 살림에 짐이 될수는 없다 싶어 수성구 범어동에 혼자살림을 꾸렸다. 손재주만은 누구 못지않은 덕에 가죽가방 끝손질에서부터 손수건수놓기까지 앉아서 할수 있는 일은 닥치는대로 하며 억척같은 삶을 열었다.

사고이후 병원신세 지느라 상당기간 현지 거주를 못하게 되자 주민등록도 말소돼 90년에야 사정을 딱하게 여긴 수성구청 한 공무원의 도움으로 되찾았다.이때부터 거택보호대상자로 지정된 것이 탁씨가 사고후 국가로부터 받은유일한 보상.

[10년이 지나니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6월부터 내무부와 국가보훈처, 대구시, 법원 등에 탄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답신은 한가지였습니다. 보훈혜택을 줄수 없다는 것입니다]

탁씨는 10년을 혼자 견뎌왔듯이 남은 인생도 결국은 혼자 열어가야 한다는생각을 굳혔다. 영세민 자립지원금으로 5백만원을 융자받고 이곳저곳에서 빌리기도 해 지난달 30일 수성구 범어동 궁전맨션후문앞에 {새마음미용실}이란상호의 3평 남짓한 미용실을 개업했다.

[더이상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젠 저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거든요]보통사람이라면 이야기 대목마다 눈물이 배어날 듯 한데 탁씨는 미소까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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