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북-미전문가회담 결산

입력 1994-09-16 00:00:00

북한은 이번 북-미 전문가회의에서 경수로문제를 대미 관계개선뿐 아니라대외접촉의 핵심 지렛대로 계속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보인다.북측은 사실상 경수로문제가 주조를 이룬 이번 회담에서 미측에 대해 한국형경수로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을 분명히 전달하면서도 구체적인 희망기종을명시하지는 않음으로써 {선택권}을 유보해놓은 사실이 북측 수석대표인 김정우 대외경제위원회위원장의 기자회견에서 드러났다.

북한의 이같은 의도는 미측에 제의해놓고 있는 경수로 채택을 위한 국제 공개경쟁 입찰방식에서도 선명히 나타난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지적이다.그는 한국형 경수로와 관련, "아직 이 세상에도 등장하지도 않은 것"이라고지적하면서 자신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합당하지않다고 말해 거부의사를 분명히 천명했다.

한국형이라고 불리는 울진 3, 4호기는 오는 98, 99년에나 가동되며 그 기술모체인 영광 3, 4호기도 95, 96년에나 가동되는 만큼 자신들이 주장하는 *안전성 *수출실적 *검증된 성능의 3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북한측의 이같은 한국형 거부 입장은 복잡한 정치, 경제적 실리계산에 따른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조문파동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와 대내외적자존심등도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 수석대표는 한편 한국이 대북 경수로 지원을 위한 국제 컨소시엄에 참가하는데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혀 북한은 경수로를 핵심축으로하는 대외정책추진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단순한 자금원}이상으로 여기고 있지않음도 드러냈다.

그는 특히 현실적으로 미국이 대북 경수로 자금을 전액 부담할수 없다는 점을 이용, "재정조달 책임은 미국이 전적으로 져야한다"고 말해 미국이 어떻게해서든 우리나라를 설득해 자금을 제공하도록 나서야한다는 점을 미국측에 간접 경고하는 것도 잊지않았다.

이는 김 수석대표가 분명히했듯이 "경수로 선택권은 북한이, 재원조달 책임은 미국이"라는 논리아래 10여년이 소요될 경수로 건설기간중 계속 협상및 결정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재정문제는 우리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만큼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경수로를 도입하겠다"는 명분아래 국제 공개경쟁입찰 형태로 경수로 발주처를선정하겠다는데서 북한측의 이같은 의도는 다시한번 분명하게 드러난다.즉, 대미관계 개선은 어느정도 진척을 본만큼 다음단계인 일본과 기타 유럽등 서방국과의 접촉 확대과정에서도 경수로 카드를 활용할수 있다는 계산으로보인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등 원전 선진국들이 세계질서 주도국들과 정확하게일치하는만큼 원전발주라는 대규모 사업을 계기로 이들 나라들과도 자연스럽게 접촉문호가 넓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같은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관계정상화의 바탕이 마련될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대형공사를 수주하게 되는 컨소시엄의 참가국들이 양측간 경제관계만큼이나정치관계에도 어느정도 신경을 쓰지 않을수 없게 될 것임은 자명한 것으로보인다.

이번 전문가회의에서는 대체에너지 문제나 폐연료봉 처리문제는 경수로 안건에 밀려 그다지 깊은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문제는 경수로제공안과 자연스럽게 맞물려가면서 진도를 맞춰나갈 사안이라는성격이 강하므로 일단 경수로 문제에 관한 입장 확인이 더 시급했던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번 회의에서 교환된 양측 입장은 불과 9일 앞으로 다가온 오는23일 제네바 회의에서 구체적 협상안으로 다뤄지게될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이이처럼 예상외로 자세한 자체입장과 전문가회의 내용을 공개한 것은 단기적으로 협상위치를 강화하자는 또하나의 의도도 개재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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