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선인장이야기

입력 1994-07-28 08:00:00

에필로그 다섯편지를 받아들고 나는 이내 그것이 혜수가 붙여온 것일거라는걸 알았다. 겉에 씌어진 주소는 네팔 어딘가였고 붙여온 사람의 이름은 {혜연(혜연)}이라고씌어 있었다. 나는 단박에 그것이 혜수의 법명이라고 짐작하였다. 그것이 본래의 이름과 크게 다르지 않고 혜수의 한자명에서와 같은 지혜 혜자를 쓰고있다는 것이 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얼른 봉투를 뜯지 않고 오래도록 {혜연}이라고 씌어진 곳을 어루만졌다.

다른 교사들이 없는 틈을 타서 조심스레 편지를 뜯었다. 편지지에서 향내음같은 것이 진하게 번져왔다. 엷은 미농지 위에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씨를 보고 있자니 눈가가 불콰해졌다.

한참동안 아무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카트만두라는 도시까지 어째서 내가 흘러들어왔는지는 설명할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 붉은 흙벽돌과 향내가 밴 나무로 집을 짓고 깃들어 살아 사람들의 눈은 선량하고 아름다워. 마치 난 공간여행을 하고 있는 게아니라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 승려의 옷을 입고 이곳에 왔지만아무도 나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기웃거리지 않아서 좋아. 진전없는, 그래서마치 생지옥속을 헤매는 것 같은 내 {도닦기}의 업에서 얼마간이나마 떠나있을 수도 있고, 나는 걷고 또 걸어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산자락에 깃들어 잠도자고, 바그마티 강에 발도 담그고, 죄다 잘라내 버린 나의 맨머리 위를 스쳐 부는 바람결도 느끼면서 나는 그저 이곳에 있는 거야. 그립지않은 것은 아니야. 내가 떠나 온 절의 이끼 낀 기와도 그 절을 둘러싸고 있던 온화한 나무숲도, 노스님의 기침소리도 모두 그리워. 좀 더 더듬어본다면언니의 그 건조한 얼굴에 설핏 어리곤 하던 까닭모를 슬픔의 흔적도 그리워.어디까지 가야 이 업장이 다할 것인지. 나는 그 끝을 몰라 이렇게 천지 사방을 미아처럼 헤매는 것일까?]

미아처럼 헤매고 다닌다는 혜수의 말이 나의 가슴을 저릿하게 짓눌러왔다.나는 계속 읽을 수가 없어 편지지를 가슴께에 꼭 대고 창밖을 보았다. 벽오동마른잎들이 푸르륵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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