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세풍-이땅에 지식인은

입력 1994-07-28 00:00:00

**부끄러운 지성**5공때 5공분위기에 맞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어느바보가 중천에 떠 있는해를 보고 달이라 불러야하는지 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몰라 길가는 사람을잡고 물어보았다. 저것이 해입니까 달입니까고. 너무 의외의 질문을 받은 행인은 무슨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나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이동네에 살지않아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하고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는 이야기다.아마도 이 행인은 [이동네에 살지 않아서...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걸보면 교수같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는 걸보면 기자 같기도 하다.대학에 인공기가 걸리고 6.25북침설 남한식민지론이 횡행해도 모두가 못본척했지 이에 정면으로 학생지도에 나선 교수가 과연 몇이나 됐나.마찬가지로 노사분규가 노동운동 차원을 넘어선 극한투쟁으로 번져도 어용으로 몰리거나 가진자편에 섰다는 비난이 두려워 대부분의 언론은 깊이 파고 들지 못했다.

온나라가 적문이나 북핵문제등을 놓고 한쪽에선 친북적이다 하고 한쪽에선통일방해라고 외쳐도 이나라 지식인은 입을 다물거나 고작 냥비 냥시논에 그치고 있다. 흑백논리는 고사하고 이를 절충시킨 회색논리마저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흑백논리도 고쳐져야 하지만 냥비 냥시논도 사라져야 한다. 그것은 해결의논리가 아니고 엉거주춤한 정체의 논리이며 기회주의자의 논리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침묵하는 지성은 정의에 대한 직무유기인 것이다.**용기있는 행동**

이러한 분위기이었던만큼 주사파배후에 김정일이 있다는 박홍총장의 발언은빛나고 용기있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진흙탕에 발을 들여놓기 싫어하는 약은 지성에게는 사서 고생하는 박총장의행동이 만용으로 비쳐질수도 있다. 그러기에 박총장은 더욱 존경받고 감동받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동안 모든 지성이 침묵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87년 대선기간이어서문제가 있긴 했지만 명지대 윤원구교수의 민중민주주의 실체분석강의와 88년그 어려운 시기에 정신문화연구원 량동안교수의 [우익은 죽었는가]하는 힘찬고발이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두교수는 좌익비판=민주화반대라는 논리를 들고나온 운동권학생들에 의해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외도 91년 김동길교수의 학생운동비판 박홍총장의 {어둠의 세력}그리고88년 김용갑총무처장관의 좌익척결에 대한 중간평가를 통한 국민심판론등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당시의 거센 민주화 바람에 묻히거나 극우보수세력으로 몰려빛을 잃었다. 그래서 지식인은 더욱 용기를 잃어 온것이 사실이다. 그외도지성인의 나약성, 기회주의적 처신등도 침묵의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지성의 역할**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누구도 정통성을 부정할수 없는 문민정부가탄생했고 또 어느때보다 통일의 분위기도 호전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우리사회의 거대한 두 기둥인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산에숨어있는 위장 민주화 통일세력을 가려내야 한다. 그것은 은퇴한 야당지도자가 이야기 했듯이 오히려 통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6.25는 남침이라는 러시아문서공개는 통일방해며 북핵은 언젠가 우리것이 될것이므로 가져도 좋다는 식의 친북적 의식이 상당히 퍼져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는 통일에 도움이 안된다. 왜냐하면 그 통일은 공산화통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이미 실패로 끝난 체제가 아닌가. 여기서 오늘의 지식인은 할일이 있는 것이다. 우리주도의 통일에 도움이 되게 사회적 분위기를 바로 이끌어가야 할 책임이 그것이다.

북의 대남전술전략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월맹식으로 월남을 흔들어놓고먹는 것이다. 그 흔드는 한 방식이 주사파등 소위 붉은 운동권을 통한 사회혼란이 아닌가. 현상황이 70년대 당시의 월남과 비교는 되지 않겠지만 민주화를 외치던 월남의 유력 정치인 학생등 상당수가 통일후 보니 모두 월맹의 프락치였다는 이대용 전주월공사의 술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것은 우리가 월남화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예방을 소홀히 하면 엄청난 국방의 소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하는 지성은 조국에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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