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잃어버린 보금자리

입력 1994-04-22 00:00:00

이상정씨(37.서구 평리1동)는 요즘 잘 지은 단독주택이나 고층 아파트를 쳐다보면 절로 눈물이 솟는다. 집없는 설움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전세값마저날린 자신의 처지가 너무 서글프다는 생각때문이다.이씨는 대부분 서민이 그러하듯 자신의 전재산 8백만원을 2년전부터 살아온전세방에 묻어두었다. 코딱지만한 2평짜리 방이었지만 이제까지 세 식구의보금자리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요만한 {안락함}도 이씨에겐 과분한것이었는지 모른다.

올 1월 집주인이 은행빚을 갚지못해 집이 은행에 넘어가고 전세값을 한푼도받아내지 못할 형편에 놓이자 이씨의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 됐다.전재산이라고 해봤자 남들이 코웃음칠 액수에 불과하지만 직장생활 6년동안안먹고 안쓰면서 모은 돈이었다. 특히 고아로 자라 용접공, 심부름센터직원,구두닦이를 전전해온 이씨의 인생역정을 되돌아볼때 부자의 천금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이씨는 같은 처지의 다섯 세입자들과 함께 전세값을 건지기위해 채권자인D은행으로, 법률상담소로 뛰어다녔지만 모두 허사였다. 임대차보호법도 입주전에 저당유무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때문에 이씨에게는 그야말로 {빛좋은개살구}였다.

서민보호를 위해 만들었다는 임대차보호법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되자 은행측에 몇차례 사정도 해봤으나 은행은 집주인의 빚 2천2백만원뿐만 아니라 소송비용을 포함해 여섯가구 전세값 3천7백만원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나왔다.결국 서민과 거리가 멀게된 {법}과 은행은 여섯 세입자의 피땀같은 돈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이씨는 얼마후면 쫓겨날 집에서 놀고 있을 세살바기 딸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허탈한 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어디 한군데 마땅히 호소할 데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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