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교과서 개편 용어논란 전말

입력 1994-03-23 00:00:00

교육부가 "국사교과서에는 학계에서 정설화된 내용만 싣겠다"는 발표로 {대구폭동}등을 둘러싼 역사용어 논쟁은 일단락 됐지만 이에따른 학계의 파문과국민적 관심은 예상외로 크다.가장 큰 논란을 빚은 분야는 현대사로 이중 {대구폭동}을 {10월항쟁}으로,{제주4.3사건}을 {제주4.3항쟁}으로 고친 부분이다.

주된 비판은 특히 대구폭동의 경우 당시 남로당을 중심으로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민중세력에 타격을 주기위해 군중을 선동해 일으킨 폭동이며 이후 주동자들이 모두 월북하여 포상까지 받은 의심할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이같은주장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계급론적 민족해방투쟁사로 규정한 민중사관에서 비롯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이번 시안은 인민대중의 혁명운동을 높이 평가하면서 애국지사들의독립투쟁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되고 있다고 비판되고 있다.특히 안중근의사등의 항일투쟁은 아예 언급도 않고 있는등 이같은 시안을 마련하게 된 근거와 그 저의 조차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10월항쟁}주장은 북한의 역사서인 조선전사의 표현 그대로이며 항쟁이란 용어는 민중사관, 수정주의 사관에 바탕을 둔 것으로 한국의 국가 정통성을 부인하고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문제의 국사교육내용 현대사 시안을 담당한 학자는 성균관대 서중석교수(47.사학과)로 서교수는 국내에서 현대사 전공의 박사학위를 가진 역사학자 2명중 한 사람이다.

다른 한 사람은 진보적 역사학자 그룹들이 결성한 한국역사연구회에 소속돼있기 때문에 교육부는 서교수에게 국사교과서 준거안 연구위원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교과서 준거안 원칙과 관련, 당시자인 서교수는 "해방 50년을 앞두고 과거를폭넓게 이해하면서 부끄러웠던 부분도 조금이나마 언급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면서 *과거 정권의 역사 평가와 달리 학문 위주의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는 점 *고교생과 차별을 둬 중학교생 교재는 가급적 새로운 시각을 신중하게 소개한다는 점 등을 염두에 두었다고 밝혔다.서교수는 특히 "문제가 된 10월 대구폭동의 경우 {소요} {봉기} {민란} {항쟁}등으로 정립된 명칭이 없으나 관련 논문과 2권의 저작을 참조하면 모두{항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이를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현재마련된 것은 교과서 개편 시안이지 완성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항쟁}이라는용어자체도 좀더 나은 적확한 용어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서교수는 그러나 이같은 비판에 대해 "학문적으로 논할 가치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서교수는 용어의 심의 과정과 관련, "주로 8.15 광복과 {해방} 문제, 6.25와한국전쟁, 4.19의거와 {혁명}, 5.16쿠데타, 여순사건 등이 논의됐으며 여순사건의 경우 그간 지역주민의 반대와 군대의 하극상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반란}대신 {사건}으로 의견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서교수는 "이번 교과서 개편작업을 계기로 근.현대사상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적확한 용어정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면서 "정권이 바뀜에 따라 역사적사건에 대한 평가 등이 더이상 무원칙하게 바뀌어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서교수는 그러나 "10월 항쟁의 경우 심의과정에서 그만 간과됐다"면서 "앞으로 충분한 심의를 거치면서 용어가 정립될 것"이라고 말했다.서교수는 "이번 준거안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자신의 의견 가운데 2백분의1에 불과하며 일부에서 비난하고 있는 {민중사학자}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용어선택 문제를 계기로 공청회, 세미나 등에서 역사 용어의공론화 과정을 통한 의견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임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연구위원회에서 현대사 관련 전공자는 이현희성신여대교수, 정재정한국방송통신대교수와 서교수 3명이다. 이중 서교수가 96년부터 사용될 중.고교 국사교과서에 포함될 현대사를 거의 혼자 도맡아 연구해 시안을 마련해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고 할수 있다.

결국 이번 국사교과서개편 준거안에 대한 논란은 교육부의 설명대로 연구위원간의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안이 발표된 데서발단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개념규정이 이루어 지지 않은 역사적 민감한 사건에 대해 편중된 사관을 통해 왜곡되어 지고 또 북한의 사회주의화 과정을 상세히기술한다는 등 균형을 잃는 일이 없어야 되겠다는 국민적 합의를 재확인한 것이 이번 국사교과서 용어논란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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