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현주소

입력 1994-01-17 00:00:00

캐나다 몬트리올 심퍼니 오키스트라를 이끌고있는 거장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 관한 일화다.몬트리올시에 사는 상당수 시민들은 그를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그의 느닷없는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한다. 통화의 요지는 몬트리올교향악단을 위해 헌금하지 않겠느냐는 것. 단돈 1달러, 아니 1센트도 우리 교향악단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이었다. 이에 대한 대다수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우리같으면 웬 채신머리냐고 퉁명스럽게 대꾸하거나 국제적으로도 명망있는 지휘자가 직접 구걸해야할만큼 교향악단 운영이 어려울까하는 의문을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몬트리올 시민들은 기꺼이 성금을 내겠다고약속했단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들이 모두에게 자랑하는 교향악단이어렵다는데 미력하나마 보태는게 시민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거장 지휘자와 직접 통화하는 영광스러움도 작용했으리라. 어떻든 한마디로향토애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몬트리올교향악단을 위해 자존심마저 팽개치고발벗고 나선 {샤를르 뒤트와}가 캐나다사람이 아니라 스위스 로잔태생의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이 시간에도 샤를르 뒤트와는 지휘봉을 잡지않는 시간에는부지런히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며 시민들에게 전화를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몬트리올은 당신의 성금과 당신을 자랑스러워한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고서.올들어 부쩍 국제화니 국제적 감각을 갖추어야 한다느니 요란스럽게 떠든다.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국제화를 강조하고, 이들의 목소리가 각종전파, 인쇄매체에 넘친다. 그들은 한결같이 국제화만이 치열한 경제, 기술,정보전쟁을 이길 수 있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우리 것, 내 고향의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애정이 국제화의 기초라는 말은 정작 찾기 힘들다. 자기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체득하지 못한데서야 국제화=승리라는 시대조류를 어떻게 따라 갈 것인가!

우리 문화와 다른 문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변별, 우리것을 더욱 발전시킴으로써만이 국제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식자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바로 이 국제화를 위해서 우리의 문화를 고급한 상품으로 만들어 내놓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다. {문화는 자기가 알고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엄연한 법칙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하면 무조건 예술문화만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정치도 문화고 경제도문화이며 생활의 질도 개개인의 의식도 문화다. 사람사는 것 자체가 문화의개념으로 이해되고 오랜 시간동안 축적돼 외형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문화다. 문화를 문화로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 이것이 바로 우리문화의 현주소다.

어설프게 책의 해를 보내고 올해는 국악의 해로 정해 각종 사업을 펼친단다.서양음악에 편향된 현대인의 정서와 우리전통음악과의 거리좁히기라는 취지지만 평소 얼마만큼 국악을 구석에 내팽개쳐 놓았는지 오죽했으면 국낙의 해라고 정했을까하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때 다른 나라 사람들은 문화라는 철갑을 둘러입고 험난한 국제경쟁을뚫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착잡한 심정이 된다.

흔히들 프랑스사람들은 자기문화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고들 한다. 지난해미테랑 불대통령 방한때 그 일면을 목격하기도했다. 병인양요때 탈취해 자기네 박물관에 소장하고있는 우리 외규장각도서를 내놓지않겠다고 몸부림치던어느 박물관 여직원의 태도에서 말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기네 것이 아니더라도 자기것이 된 것, 그것이 자기네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든다면 남의문화도 엄연히 내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우리도 {신토부이}니 {우리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말을 TV에다 내놓고 떠들어야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할 때다. 말만이 아니라 내 것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야 할때다. 부지불식간에 지금 우리 주변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우리의 문화와 전통예술을 추스르고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것, 향토문화를 눈여겨보는 것이 향토를 사랑하는 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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