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그 격동의 오늘-(9)

입력 1993-11-23 08:00:00

쭉정이가 태반인 빈들, 썩어나자빠지는 배추밭, 3%인상 9백만섬 수매, 가속화하는 수입개방, 그리고 늘어나는 빚더미.농촌은 그래서 올겨울이 유난히 춥다. 천길벼랑으로 몰린듯한 한숨소리가 마을마다 가득하다. 살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올해로 18년째 돼지와 소를 키우는 Y씨 역시 농사에 대한 회의가 부쩍 늘었다. 그도 군제대후 바로 뛰어든 축산업이 재미가 붙어 밤잠을 놓치기 일쑤이고, 농사만 짓고도 잘 살 수 있다는 나름대로 키워온 {확신}이 누구보다 강고했지만 이제는 나날이 맥이 풀리고 있다. UR이란 말이 나온 뒤부터는 그 자신그렇게 주변에 권유까지 하던 농촌생활이 암담해 보이기조차 한다.{도대체 농사로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돼지 7백여마리, 소 30여마리로 비교적 {중농}인 농민후계자 자신도 이런 되물음에 휩싸여있는 판인데 이른바{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 표방의 신농정은 과연 어떻게 우리 농촌을{구원}할 수 있다는 것인지 Y씨는 심란하기만 하다.

새정부 들어서도 농촌사람들은 농정의 변화를 별로 확인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Y씨는 생각한다. 정부간섭도 크게 줄지 않았다. 얼마전에 이웃이 낸 참기름공장에 1천여만원이 들어간 폐수처리장 설치만 해도 그렇다. 가내수공업형태로 참기름을 짜 농가소득을 올려보겠다는 거기에다 중소기업규제하듯이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더구나 나오지도 않는 폐수의 처리시설까지 강제하는 꽉막힌 행정은 분명 잘사는 농촌을 만들겠다는 쪽하고는 거리가 있다.Y씨 자신의 {전공분야}인 축산도 마찬가지다. 수입개방에 맞서 경쟁력을 갖춘 축산업을 내세우면서 그 여건개선은 여전히 제자리 상태다. 돼지를 놓고봐도 우리는 미국이나 대만보다 영농비가 30-40% 더 많이 드는 형편이다. 사료에 부가가치세 10%부과, 축사용자재의 수입시 엄청난 관세등등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경쟁력 있는 농촌건설은 말뿐이라는 생각밖에 안든다.그래서 Y씨는 {냉동육수입이 94년도에 열리고 또 97년까지 모든 외국 농산물의 수입개방이 터지면 어찌할 것인가} 그야말로 대책이 서질 않는다.이웃 Y씨의 올 벼농사를 보면 더욱 우울하다. 보통 20가마 나는 논에서 올해는 5가마, 그나마 탈곡후 경운기에 실을 때는 그의 부인이 벼가마를 번쩍 들만큼 가벼웠으니 올 냉해의 심각함은 알만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냉해피해면적을 발표하고 10년이래 가장낮은 인상률의 수매가를 발표하면서 신농정의 {장미빛}을 떠들어댄다. Y씨의귀에는 {문민정부이지 농민정부는 어차피 아니잖느냐}는 자탄도 해본다."어렵고 심각한 지금의 농촌상황을 높은 사람들이 전에처럼 눙쳐나가려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러면 안으로 곪습니다. 그 아픔을 바로 새겨 풀어주어야 합니다"

{올 겨울에도 도시공사판으로 떠돌 농사꾼이 얼마나 일지} 흙먼지를 일구는들머리께를 보며 Y씨는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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