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도의 정비

입력 1993-08-28 12:38:00

금융실명제의 전면실시로 정치권은 엄청난 개혁과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제는 여야정당은 물론 국회의원들은 운영이나 행태에 있어 근본적인 변신을하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그러나 정치권이 변해야한다는 얘기는 해방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제기되어왔기때문에 식상한 메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정치권은 이번만큼은 제살을 도려낸다는 절대절명의 의지와 각오를 가지고 변화의 시대에 부응해야할것으로 보인다.

수십년간 정치권의 개혁은 말로만 그친감이 적잖고 설령 개선이 되었다하더라도 전혀 감지하기 힘들정도의 미미한 수준이었다는게 일반국민들의 느낌이고 학계등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제는 정치개혁이 구두선이 아니라 그야말로 법과 제도로 정착시켜나가야할 시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법과 제도만이 정치개혁을 담보할수있는 유일한 장치이다.

특히 간과되어서는 안될 사실은 첫째 현재 진행중인 여야의 정치개혁작업이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져야지 졸속처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점과 둘째 한번 만들어진 법은 엄격히 적용, {이제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을 절실히 느끼도록 해야한다는 점이다.

과연 정치권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하고 정치개혁논의과정에서 어떤점에 비중이 주어져야 할지를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일단 정치권에 검은 돈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의 지출을 대폭 줄이는 노력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민자당 한달 평균 28억원, 민주당은 8억원정도의 돈을 쓰고 있다. 이의 개선을위해서는 각정당들이 조직의 목적을 선거대비관리보다는 정책기능쪽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해야한다는 것이다. 우선 각정당의 인력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가야한다. 미국등 선진국의 경우 각당의 평균인력이 1백명내외수준으로 우리나라 민자당의 유급당원수인 8백60명과는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다. 정당차원으로 봐서는 이 문제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선진국의 경우 정당은선거보다는 의정활동을 중시하고 있으며 자연 정당도 국회안에서 움직이는모습을 띠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의 정당에서 가장 실력자는 우리처럼사무총장이 아니라 원내총무라는 점에서 잘 읽을 수 있다.

국회의원들도 지역관리비가 지출의 주종인만큼 이들 비용에 대한 획기적인감축이 요구되고 있지만 이는 국민들, 즉 지역구민들의 의식개혁이 뒤따라주어야 개선이 가능하다고 볼수 있다.

금융실명제로 정치권은 유입돈이 줄어들기때문에 {국고보조금을 늘려라}{후원회수를 늘리고 상한액을 2배로 증액시켜라}등의 주장을 펴고 있으나 지엽말단적인 얘기라고 볼수 있다.

정치권이 하루속히 개선해야할 사항은 돈으로 금배지를 다는 전국구제도의전면적인 재검토를 들수 있다. 야당도 14대때 일인당25억원정도의 돈을 거두었고 여당도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일부재력가들이 돈을 동원한것은 주지의사실로 부끄러운 우리의 정치현주소가 아닐수 없다.

그대신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을 위한 의정활동에 치중할수 있도록 제도적인뒷받침이 반드시 마련되어야한다는 지적이 높다. 우리의 경우 유급비서진을5명까지 둘수 있으나 여비서 운전사등을 빼면 의정활동보조인력은 고작1명뿐으로 이 인력가지고는 질높은 의정수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들 연구보조인력의 대폭적인 확충이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것이다. 미국 상원의원의 경우 13-17명, 하원의원은 18명의 상근비서를 둘수 있도록 되어있는데이들의 상당수가 관련학과의 아르바이트학생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정치개혁시 다음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각정당이 국민들의 자발적인참여로 운영되도록 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대중성을 갖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각정당의 대중성확보는 매우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민자당이 각 지구당별로 수만명의 당원을거느리고 있지만 1인당 1천원씩 내라는 당비납부운동결과 몇달동안 고작 1백명도 되지않는 곳이 대다수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하루아침에 해결될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를위해 국민들도 참여에 의한 민주주의가 습성화되도록 노력을 해야겠고각정당도 이념이나 노선 그리고 능력, 도덕성을 통해 지지를 받도록 해야한다.무엇보다 각정당은 색깔을 분명히 해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부터 자발적인후원을 받도록 하는 풍토가 절실하다고 볼수 있다. 야당도 노동자, 농민, 중산층등으로부터 다양한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소지도 있기때문에 정치권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무조건 우리만 손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할때도 되었다.정당및 국회의원들의 정치비용의 획기적인 축소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더이상 돈이 난무하는 선거가 되지않도록 처벌조항이 있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한다는 것이다.

돈안드는 선거측면에서 세계제일의 모범국가라는 영국도 부정타락선거가 고쳐지질 않자 지난 1983년 부패방지법을 만들어 부패행위를 할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하는 가혹한 조치를 단행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 정치권의 개혁도 바로 법을 얼마나 두려워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와관련 주목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역시 선관위의 위상제고를 먼저 손꼽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도 정당이나 후원회의 정치자금은 물론 선거비용도선관위에 보고하도록 되어있으나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이제는 금융실명제실시로 검은돈의 유입이 크게 차단되는 상황을 맞고 있기때문에 선관위의 기능과 권한을 대폭 강화시키면 정치권의 변혁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견해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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