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훈장애국장추서 박영진대위

입력 1993-08-14 08:00:00

"포상소식을 들은날 아버지라고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자식과 그분의 모습이눈앞에 어른거려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1939년부터 해방될때까지 광복군으로 중국.버마등지에서 활약한 공적이 인정돼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게되는 고박영진대위의 미망인 이애선씨(66.대구시수성구지산2단지201동209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광복군 제2지대 제3분대장으로 활약하다 45년 버마로 파견돼 한.영연합작전에 참전하기도 했던 고박대위와 이할머니가 결혼한 것은 47년.결혼 다음해 군에 입대한 박씨는 광복군 활동경력이 인정돼 소위 임관 한달만에 대위로 진급했다. 그러나 원주6사단에 근무하던 박대위는 아들 종욱씨(당시3세.현재 우체국근무)를 남긴채 6.25전쟁 첫날 전사하고 말았다."그날은 일요일이어서 집에 있었는데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군대로 복귀했었죠. 그뒤로 소식이 없어 아들만 데리고 친정인 대구로 왔습니다.한참이 지나서야 전사통지서가 도착했습니다"

이할머니는 23년전 퇴사할때까지 전매청에 근무하면서 수위.탁아소보모.담배포장등 온갖 궂일을 도맡아 했다.

퇴직한 후에는 바느질과 뜨개질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이할머니는 "중매섰던 사촌오빠가 독립기념관에서 버마 한.영연합작전때 찍은 사진을 본것이 계기가 돼 지난91년11월 서훈신청을 했었는데 좀 늦은 감이없진 않지만 이제 그분의 공적이 인정돼 다행스럽다"며 "바라는게 있다면 비록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손자.손녀지만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훌륭하게 성장해 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잠시 목이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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