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쟁의로만 존재하나

입력 1993-07-21 08:00:00

@무너지는 자률주의 신정부가 희망했던 {노사자율주의}가 허망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험마저 걸었던 울산 현대계열사 노사분규는 긴급조정권 발동이라는 숨가픈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아득하게 제3공화국 시절인 지난69년, 딱 한번 써먹은 {타율의 극약처방}을 문민정부가 사용하는 딱한 처지다.이인제노동부장관의 노정은 {노사자율원칙}으로 통상 분석하기는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정책들의 상당수가 현실감각이 조금은 결여됐다는 지적도받는다. {제3자 개입 재검토} {무노동 부분임금} {노동조합비 상한선 철폐}등이 그 범주에 속한다. 결국 {제3자 개입} {무노동 무임금}부분은 원래 모습대로 되돌려진 것이다. 사실상 철회로 귀착됐다. [무노동 부분임금은 노사당사자간의 권리의무에 관한 것으로 정부는 간여할수도 없고 간여하고 싶지도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부문에 관해 이장관은 또 [무노동 부분임금은 이미 판결로 굳어져있다. 근로자가 파업기간중의 임금 일부를 꼭 받으려면 재판을 통해 사법부의 개별적 판단에 따라야 할 것]이라는 방침의 후퇴를 밝힌다.@관행의제도화가 논란 사실 {부분임금}은 노동현장에서 어떤 형식으로든지 지급되어온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다. 이 관행을 정부차원에서 확인시도가 논란을 빚은 것이다. 노동조합비 상한선 철폐 방침도 일종의 논란거리 제공으로본다. 노동자의 부담가중과 함께 {파업기금 적립}이나 {전임자 임금의 노조부담}을 유도하려는 발상으로 노동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두원칙은 이론상 명백하게 근로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관행이나현장 형편을 고려하면 이들 원칙들은 지켜질지 의문이 간다.정책이야 어떤 것이 되든 {울산사태}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심정은 안타까움의 차원을 넘어서는 분노로까지 집약된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도 그렇지만 종래의 노사관계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현대그룹은 평소 다른 재벌그룹에 비해 노무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노무담당 임직원이 그룹 최고경영자의 눈치보기에 바빠 노사분규 초반부터 적절한 방안을 제시못한다는 이야기다. [해결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때에 따라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습에 나서 물의도 일으킨다. 대표적인 경우가 서정의씨 납치사건. 지난 88년 5월에 있었던 이 사건은 현대건설측에서 노조위원장인 서씨를 납치하는 소동을 빚었고 결국 그룹측에서 사과문을 내는 공개적인 수모도 당했다.

현대계열사 분규 모습은 노사가 갈길을 이미 짜놓고 협상자리에 앉았다는 질타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회사측의 최종안과 노조측의 해고근로자 선별복직 불가 방침 후퇴 총파업 출정식(21일)을 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등의 수정안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안들이 긴급조정권 발동준비중에 나왔다는 그 사실자체가 자율타결보다는 전술전략차원에서 대화를 가졌다는 증거로 남는다.@새노사관정립 아쉽다 현대자동차의 노사분규는 21일 새벽 마라톤협상으로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내기는 했다. 이 협상과정에서 서로 {유연성 발휘}라는 용어를 선택, 유연성으로 포장했지만 이 용어선택배경은 {상대측의 자신들의 안전폭수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도사리고 있다. 종전의 협상방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지성인의 집단으로 자부하는 언론사들의 노사협상테이블에서도 {전투의 승리}로 치부하는 형편이고 보면 노사협상의 유연성은 기대하기 어렵고, 쟁의.쟁의행위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노사관계는 정녕쟁의로만 존재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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