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포커스]이주형 수협은행장

입력 2009-05-11 06:00:00

4년 내 자산 30조 달성

이주형(57) 수협은행장은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한번 붙기도 힘들다는 행정고시에 '두번이나' 합격하고 나서야 공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 2학년 때(서울대 정치학과) 유신반대 시위에 가세, 25일간 구류된 전력 때문인지 1977년 행시에서 1, 2차 시험에 모두 합격했으나 면접에서 떨어졌고, 2년 후 다시 시험을 봐 최종 합격했다. 그는 "운동권은 아니고 시대 상황 때문에 시위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는 등 말을 아끼면서도, 이를 통해 어렵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아픔을 알게 됐다고 부언했다.

시위전력 때문에 떨어졌다면 행시를 다시 본다는 게 부담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정부 부처에서 일하고 싶은 미련을 떨치기 어려웠고 면접에서 두번씩이나 떨어뜨릴 수 있겠느냐는 오기도 생겼다"고 말했다. 두번째 면접을 볼 때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1979년 말이어서 상황도 변했을 듯하다. 그러나 처음 행시에 떨어지고는 낙담, 한국외환은행에 입사했었기 때문에 공직과 멀어질 뻔도 했다.

행시 합격 후 재무부 사무관으로 출발해 재정경제부에서 과장과 국장을 거쳐 공직생활 24년째인 2003년 말 사표를 제출한 뒤, 예금보험공사에서 부사장을 지냈고 지난 4월 13일 수협은행장으로 취임했다. 공직 생활 중에는 사하라 이후 최대 피해가 났던 태풍 루사 때 물가정책과장을 맡아 피해 대책과 생필품 가격 안정 등을 총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까지 받았던 게 기억에 남는단다.

은행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업무 파악에 바쁜 상황임에도 어렵게 시간을 내 언론사들 중 가장 먼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 행장은 첫번째 고객 행사로 우수고객 초청 독도 체험 행사를 21일부터 이틀간 추진할 정도로 독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수협은행 차원에서도 은행권 최초로 1994년부터 독도사랑예금과 독도사랑카드를 통해 독도사랑기금을 조성, 독도보존협회와 함께 활동해 왔다.

또한 2013년까지 자산 30조원, 당기 순이익 3천억원을 달성하는 중견 은행을 목표로 하는 '비전 2013년'을 직원들에게 선언했으며,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지역금융본부를 대구 수성구에 신축한 데 이어 영업점을 지속적으로 신설·이전할 계획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물었더니 "대구가 아직도 섬유 도시라고 자부할 수 있느냐"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뒤 "패션과 연계시키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섬유산업 부활을 위해 지자체와 지역 기업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신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한다. 모든 일은 사람들과 만남에서 시작되고 그 만남을 통해 해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30년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인연을 잘못 맺어 크게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악연이었던 사람도 나중에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으로 다시 만날 수가 있는 만큼, 사람을 대할 때는 최선을 다해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평소 운동을 즐겨한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1시간 이상 산책을 하고 주말에는 테니스나 등산을 할 정도여서 "체력에 관한 한 젊은 세대에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때는 친선 축구 경기에 나가 풀타임으로 뛴 것은 물론, 신입 사원들과 함께 겨울에 100㎞를 행군하는 등 극기 훈련에도 참여했단다.

안동에서 태어났으나 어릴적 영덕으로 이사 가 초등학교를 다니다 대구로 전학, 대봉초등·대구중·경북고를 졸업했다. 같은 안동 출신인 류성걸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고교 후배이자 행시 동기이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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