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10대 형제 사건에서 돌아봐야 할 것들

입력 2021-09-28 14:20:57 수정 2021-09-28 16:26:43

윤정훈 사회부 기자

윤정훈 사회부 기자
윤정훈 사회부 기자

대구 10대 형제의 친할머니 살해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다. 서구 비산동의 한 주택에서 18세, 16세 두 형제가 야밤에 친할머니를 흉기로 찌른 참혹한 사건이었다.

세간은 사건의 잔혹성에 집중했다. 대다수 언론에 달린 댓글은 죄다 '형제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등 엄벌을 요구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적었다.

극단적이고 충동적으로 보이는 사건일수록 갖가지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 발생한다. 기자는 그 이유를 찾아 비극 발생에 조금이라도 일조한 사회의 허점을 메우는 것이, 단순히 형제에 대한 공분을 높이는 것보다 생산적이라 판단했다. 물론 형제의 살인에 서사를 부여하고, 가해자에 대한 동정 여론을 일으키자는 의도는 결코 아니었다.

취재 과정에서 조손가정과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 부족과 이로 인한 지원 체계의 허점이 드러났다. 조손가정 대부분은 부모의 이혼으로 형성돼 아동이 트라우마를 가진 채 조부모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가정과 아이들을 위한 지원책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었다. 대구시의 조손가정 현황 파악을 위한 실태 조사는 거의 전무했고, 필요한 복지 및 교육 지원 서비스들은 각 부서에 산재돼 있어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조부모들이 직접 알아서 신청하기 힘든 구조였다.

특수교육 대상자 역시 선정과 관리, 검사에서도 미흡한 점이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특수교육 대상자 비율이 낮은 편이다. 겉으로 보이는 장애뿐 아니라 정서·행동·학습장애도 특수교육 대상자로서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단 인식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아이가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는 것이 '장애'로 낙인찍히는 것이라 생각해 학부모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특수교사 등 실무자들의 근로 여건 개선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특수교사 1인당 맡는 학생 수를 결정할 때 학생의 연령만이 아니라 장애 등급 및 성별 등도 고려해 교사들이 보다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했다.

통합 학급의 경우 학교로 파견되는 현장 인력의 질적 향상 역시 필요했다. 학생의 정서·행동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실시되는 정서·행동검사 또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민감도를 높이고, 보다 꼼꼼한 신뢰도·타당도 분석이 이뤄져야 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관련 기관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였다. 기관들은 시스템의 허점을 적극적으로 점검하기보다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힐까 봐 '몸 사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형제가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기자가 수십 번 물었으나 침묵하거나 회피하고 얼버무렸다. 기관들은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라는 이유를 댔지만, 기자에겐 단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로 들릴 뿐이었다. 기관들은 어떠한 사과나 유감 표명, 대책 발표도 없었다.

대구시는 내년 상반기에 주거빈곤아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계획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전국 최초로 문화예술중점 특수학교가 설립될 만큼 특수교육의 메카로서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이러한 행보와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 우선 대구시는 조손가정 아동과 조부모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지원 시스템상 부실한 점은 없는지 조사를 통해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보다 폭넓은 특수교육 대상자 선정과 특수교육 내실화를 위해 정서·행동검사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수술을 하려면 먼저 생살을 찢어 안을 살펴야 한다. 찢는 게 무서워 방치한다면 상처는 곪아 썩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