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전엔 국난 극복, 이번엔 인류 평화 위해 29일 고불식…10만 평 '대장경타운' 추진… 670여 명 판각 교육·산벚나무 300t 확보
완성까지 길게는 100년. 해인사가 대장경을 다시 새기는 대역사에 나섰다.
800여 년 전 몽골의 침략 속에서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빌며 새겼던 팔만대장경의 정신을 오늘의 인류 평화로 잇겠다는 것이다. 해인사가 추산한 사업비는 3조~5조원에 달한다.
경남 합천 해인사는 29일 오후 2시 법계탑 마당에서 '다시 새기는 대장경, 인류를 향하다'를 주제로 대장경 판각 고불식(告佛式)을 열었다. 고불식은 큰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부처님께 그 뜻을 알리는 의식이다.
주지 혜일 스님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800년 전 나라와 백성을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대장경을 새겼듯, 이제는 지구의 미래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그 정신을 잇겠다"고 말했다. 전쟁과 기후위기, 인공지능(AI)이 불러올 위협 속에서 생명 존중과 공존의 뜻을 목판에 담겠다는 취지다.
해인사는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고 판각을 이어갈 계획이다. 사찰 소유 부지 약 33만㎡(10만 평)에 '대장경타운'을 조성하고, 판각 작업장과 300명가량을 수용할 숙식시설, 경판 보관시설을 단계적으로 건립한다.
이곳에는 새로 제작할 경판 가운데 5만~6만 판을 보관·관리한다. 나머지 경판의 최종 봉안 장소는 추후 결정한다. 사업비는 정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가장 큰 과제는 판각 기술자 양성이다. 현재 전통 판각 기술을 갖춘 전문 인력은 15명 안팎에 불과하다. 해인사는 2023년 11월 사찰 최고 의결기구인 임회에서 판각 추진을 결정하고 전담 기구인 장경도감을 설립했다.
산하 판각학교에서는 국가·지방무형유산 각자장 등 교수진 10여 명이 판각 장인인 각수(刻手)를 양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스님과 일반인 670여 명이 무료로 판각을 배웠다. 외국 국적 스님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일반 외국인으로 교육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경판 재료인 산벚나무 약 300t을 확보했고, 안정적인 목재 수급을 위해 사찰 소유 땅에 돌배나무 2천 그루를 심었다. 목판의 뒤틀림과 균열을 막기 위해 전통 침수 방식과 현대 건조 기술을 비교하는 실험도 추진한다.
이번 판각은 기존 팔만대장경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글자씩 새기는 과정에 담긴 정성과 수행의 정신, 전통 판각 기술을 후대에 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날 고불식에는 해인총림 방장 대원 스님과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신도 등 2천여 명이 참석했다. 고불문 낭독과 법어, 발원문에 이어 장경판전 순례와 전통 판각 시연이 진행됐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2007년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