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디지털시장법 집행 완화를 관세 인하 조건으로 제시…EU "협박" 반발
트럼프 행정부가 EU에 디지털시장법(DMA) 집행을 완화하지 않으면 유럽산 철강·알루미늄에 부과한 최대 50% 관세를 낮출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전달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주 회원국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미국 측의 이 같은 요구를 공유했다. 미국은 EU가 DMA 집행을 완화해야 유럽산 철강과 일부 다른 제품에 대한 관세를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DMA는 구글·애플·메타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이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경쟁사를 배제하거나 이용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이다. EU는 2025년 4월 이후 DMA에 따라 애플·메타·구글에 총 15억9천만유로(약 2조4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미국은 이러한 규제가 자국 기업에 불리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반발해왔다.
미국과 EU는 지난해 7월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EU산 제품에 부과하는 미국 관세에 원칙적으로 15% 상한을 적용하는 무역합의를 체결했다. 그러나 EU산 철강과 알루미늄에는 여전히 최대 50%의 관세가 유지되고 있어 EU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요구는 지난해 무역합의 이후 잠잠해졌던 미·EU 무역 갈등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시 촉발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이 철강 관세 인하를 빅테크 규제 완화와 연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해 11월 브뤼셀을 방문했을 때도 EU가 디지털 규제를 완화하면 철강·알루미늄 관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U 경쟁정책을 총괄하는 테레사 리베라 집행위원은 이를 '협박'이라고 비판하며 디지털 규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도 디지털·세금 규제는 무역협상에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앤드루 퍼즈더 EU 주재 미국 대사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디지털 시장에서의 경쟁 문제를 다루려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 기업들로부터 이익을 거둬 유럽에 이익을 주려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미국 측이 DMA 과징금 자체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수익 추출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 발언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미국의 철강 관세 관련 합의 이행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미국산 공산품에 부여한 무관세 혜택을 철회할 수 있다. 다만 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들은 무역전쟁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우려해 실제 보복 조치에는 소극적인 상태다.
미·EU 간 디지털 규제와 무역 관세를 연계한 압박이 반복되면서, 올해 말 합의 이행 평가를 앞두고 양측의 협상 부담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