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프랑스 전역에서 최대 8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교사 부족과 열악한 교육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고물가·생활비 부담과 긴축재정 반대로 번졌다. 일부 시위대의 방화와 약탈로 두 차례 세계대전도 견뎌낸 남부 리모주의 143년 된 시청 건물마저 화염에 휩싸였다. 사태 수습은 쉽지 않다. 프랑스의 올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를 웃돌고 국가부채는 120%에 육박할 전망이다. 정부는 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시민들은 교육·복지 확대를 요구한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해법보다 책임 공방(攻防)에 몰두하고 있다. 재정 위기가 민생 불안을 키우고, 시민들의 분노가 정치 위기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심각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에 시달린다. 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시민들은 교육·의료·복지 확대를 요구한다. 긴축은 가계 부담을 키우고, 지원 확대는 재정을 압박한다. 문제는 재정만이 아니다. 집값 상승은 집주인에게 재산 증식이지만 무주택 청년에게는 독립과 결혼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성장의 열매가 고르게 나눠지지 못하면 풍요와 궁핍의 위태로운 공존(共存)이 생긴다. 2015년 그리스에서는 오랜 긴축과 경기침체에 대한 반발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집권했다. 하지만 새 정부도 결국 채권단의 혹독한 구제금융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거리의 분노가 집권 세력을 바꿀지언정 부조리한 경제 구조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한국은 수출과 기업 실적 호조에도 계층·연령별 소득 불균형이 심화한다. 일본은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 증가와 실질임금 문제를 떠안고 있고, 미국은 막대한 국가부채와 주거·의료비 부담, 자산 불평등에 흔들린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지식인 스테판 에셀은 2010년 93세에 펴낸 '분노하라'에서 불의와 불평등에 침묵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의 외침은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과 미국의 월가 점령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16년이 흘렀지만 유럽의 거리는 오히려 분노로 가득 찼다. 세계경제포럼은 올해 보고서에서 인공지능(AI)의 생산성 향상이 오히려 중산층 붕괴와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의 분노는 가까운 미래에 닥칠 세계적 대충격의 예고편에 불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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