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모형 재설계로 월지급금 3.13% 인상, 초기보증료 1.0%로 연보증료 인상·기존 가입자 소급 배제 놓고 소비자단체 반발
4억원짜리 집을 가진 일흔두 살이 올해 주택연금에 들면 매달 133만8천원을 평생 받는다. 지난해 같은 조건으로 가입했다면 129만7천원이었다. 금융위원회가 계리모형을 다시 짜 3월부터 월지급금을 평균 3.13% 올린 결과다.
가입 문턱도 낮아졌다. 6월부터는 요양원에 들어가 집을 비워도 연금을 받을 수 있고, 부모가 숨진 뒤 자녀가 빚을 갚지 않고 연금을 이어받는 길도 열렸다. 그러나 해마다 내는 보증료가 오르고 기존 가입자는 혜택에서 빠지면서, 주택연금 개편을 둘러싼 셈법은 당국과 가입자 사이에서 여전히 갈린다.
◆ 정부 쪽: 기금 지키면서 평생 수령액 849만원 늘렸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개편의 핵심을 계리모형 전면 재설계로 설명한다. 평균 가입자가 기대여명 17.4년 동안 받는 연금 총액은 약 849만원 늘어난다. 공시가격 12억원 주택이면 매달 13만6천원을 더 받는다.
가입할 때 한 번 내는 초기보증료도 집값의 1.5%에서 1.0%로 내렸다. 4억원 집이면 200만원을 아낀다. 중도에 해지할 때 초기보증료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는 기간도 5년으로 늘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기금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월 수령액을 최대한 더 늘릴 수 있도록 주요 변수를 개편했다"고 말했다.
초기보증료 환급 기간은 종전 3년이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월 5일 내놓은 개선방안은 이를 5년으로 2년 늘리면서, 해지 시점이 늦을수록 돌려받는 금액이 줄어드는 슬라이딩 방식을 택했다. 가입 뒤 집을 팔거나 연금을 끊어야 하는 가입자의 손실을 줄이려는 장치다.
고가 주택의 변화 폭은 더 크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지난 8월 10일 발표한 상반기 운영실적을 보면 공시가격 12억원 주택의 월 수령액은 336만7천원에서 350만3천원으로 4.03% 올랐다. 전체 평균 인상률을 웃도는 수치다.
◆ 소비자 쪽: 연보증료 0.95%, 오래 살수록 비용 커진다
초기보증료를 내린 대신 대출잔액에 해마다 붙는 연보증료율은 0.75%에서 0.95%로 올랐다. 금융소비자연맹은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는다. 처음 내는 돈은 줄었지만 대출잔액은 연금을 받을수록 불어나고, 보증료도 거기에 비례해 쌓이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단체와 학계는 15년 이상 연금을 받으면 누적 비용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시니어 자산관리업계도 장기 생존 시 총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공사도 연보증료를 올린 이유를 감추지 않는다. 공사는 개선안에서 연보증료율 인상이 보증 재정의 건전성을 메우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월지급금을 올린 만큼 생기는 기금의 빈자리를 가입자가 해마다 내는 보증료로 채우는 구조다.
◆ 공사 쪽: 요양원 가도 연금 유지, 자녀는 빚 없이 잇는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6월부터 실거주 요건을 풀었다. 부부합산 1주택자가 요양시설에 들어가거나 병원에 입원하면, 집에 살지 않아도 새로 가입하거나 연금을 유지할 수 있다. 공사 승인을 받으면 집 전체를 세놓아 임대료를 받는 것도 허용된다.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부부가 실거주 예외를 인정받아 집을 월세로 내주고, 연금과 월세를 함께 받은 사례가 이미 나왔다.
세대이음 주택연금도 같은 날 출시됐다. 부모가 숨지면 55세 이상 자녀가 대출잔액을 한꺼번에 갚지 않고 같은 집으로 연금을 이어받는다. 부모 빚을 갚는 데 쓰는 개별인출 한도는 절반에서 90%로 높였다.
시가 1억8천만원 미만 저가주택의 우대 폭도 일반형 대비 20.5%로 커졌다. 종전에는 14.8%를 더 주는 데 그쳤다.
실거주 예외 사유는 요양시설 입소에 그치지 않는다. 공사가 지난 5월 11일 낸 자료를 보면 자녀 봉양이나 노인복지시설 입주도 증빙만 하면 신규 가입과 담보주택 임대가 허용된다. 저가주택 우대형의 월 우대액은 9만3천원에서 12만4천원으로 늘었다.
◆ 기존 가입자 쪽: 16만명에겐 소급 없다
오른 월지급금과 낮아진 초기보증료는 3월 이후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된다. 금융위원회는 기존 가입자에게 소급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8월 말 누적 가입자는 16만2,498명이다. 대한은퇴자협회는 이들이 새 조건을 받으려면 해지하고 다시 가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대출잔액과 이자를 정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 남은 쟁점: 가입률 2.1%, 지방 우대책은 미정
한민수 의원실이 공사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올해 1~8월 신규 가입자는 1만2,427명이다. 지난해 한 해 가입자의 89%를 여덟 달 만에 채웠다. 상반기 신규 가입자 8,879명은 역대 최대다.
대상 가구 대비 가입률은 2.1%로 제도 도입 뒤 처음 2%를 넘었다. 그래도 미국 역모기지 가입률 3.8%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가입자의 60% 이상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금융위원회 안팎에서는 지방 고령층을 위한 추가 우대책 검토가 제기됐지만 아직 내용은 없다. 6월 출시된 세대이음 연금의 승계 건수도 국감 자료에 따로 집계돼 있지 않다.
연보증료 재조정과 기존 가입자 구제 여부도 열려 있다. 정부가 내건 연간 신규 가입 2만건, 가입률 3% 목표의 시한은 2030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