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현의 코스모스: 과거에도 현재에도…'
판화·설치 등 20여 년 작품 세계 한자리에
12월 19일까지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제주의 밤바다를 밝히던 집어등이 전시장을 환하게 밝혔다. 한때 바다를 오갔을 폐선은 하나의 예술품이 됐고, 한 공간에는 바다가 멈춘 듯 소금이 넓게 펼쳐졌다.
제주에서 유년기와 청년 시절을 보낸 부지현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자리에서 살펴보는 개인전이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부지현의 코스모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 첫 문장인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에서 가져왔다. 작가의 20여 년 작품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을 펼쳐보인다는 의미가 담겼다.
작가는 인당뮤지엄 공간에 맞춰 현장에서 제작한 대형 설치작품 6점과 판화 6점 등 총 12점을 로비부터 1~5전시실에 걸쳐 선보인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높이와 구조에 따라 각 전시실 별로 다른 느낌을 주는 공간이어서, 오랜 시간 많은 고민을 하게 했던 전시"라며 "로비에서 시작해 1전시실부터 5전시실을 거쳐 다시 로비로 돌아오는 동선을 살려, 여러 작품이 하나의 맥락을 갖고 순환하는 형태에 중점을 두고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내가 왜 작업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돌아보게 됐지만 사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하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 상태마저도 내 작업의 과정이고, 현 상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했다"며 솔직한 마음을 얘기했다.
그가 작업 초기부터 주요 소재로 삼은 것은 밤바다에서 고기를 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집어등이다. 판화를 전공한 작가는 바다의 이미지를 종이 위에 찍다가, 폐집어등을 직접 사용하는 설치 작업으로 나아갔다.
그는 집어등을 '어둠을 짙게 만드는 빛'이라고 표현한다.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는 강한 불빛이 오히려 주변의 어둠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것. 작가는 "빛을 작업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둠의 공간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로비에 놓인 '배(The Boat)'에서 시작한다. 실제 폐선의 뱃머리와 폐선을 잘라 만든 손바닥 크기의 불규칙한 조각 100여 개로 구성했다. 바다를 오가던 배는 기능을 다한 뒤 해체됐고, 그 일부가 미술관으로 옮겨져 새로운 작품이 됐다.
뱃머리가 향하는 1전시실에는 '시간의 표면(Solid Sea)'이 펼쳐진다. 바닥을 가득 채운 3톤(t)의 흰 소금은 정지된 바다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모든 물이 증발하고 감정과 기억만이 남아 응고된 상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2전시실은 작가의 지난 작업을 새로운 작품 '멈춰 선 구조(Structure at Rest)'로 재구성한 아카이브 공간이다. 20여 년 간 작품의 일부였던 모터와 추, 종, 거울, 전구, 전기회로 등을 다시 모아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만들었다.
"이전의 작품에서는 전선, 모터 등을 철저히 숨기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것들을 다 꺼내서 각자의 역할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모터 소리가 겹쳐 하나의 음악처럼 들리기도 하고, 전선이 나뭇가지처럼 아름다운 형태를 보여주기도 하죠. 그동안 제어하느라 힘들었던 것들을 벽면에 드로잉하듯 펼쳐놓으니 속이 시원합니다."
3전시실의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감탄이 터져나온다. '잠정적 형상(Provisional Form)' 작품은 집어등을 바닥에서 천장까지 기둥처럼 쌓고 중앙에 프리즘과 광학필터, LED로 구성한 회전 광원을 설치했다. 프리즘과 필터를 통과한 빛은 여러 색으로 분산돼 전시장 벽면과 공간을 채우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 작품은 집어등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에서 출발한 작가의 관심이 빛 자체의 성질과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는 최근 작업의 변화를 보여준다.
자연광이 내리쬐는 4전시실은 '빛의 숨결(Luminous Breath)'을 주제로, 2005년의 흑백 판화들과 지난해 작업한 설치 작품이 20년의 시간을 건너 만났다. 흑백 판화 속에 그려진 집어등은 폐집어등을 활용한 샹들리에의 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집어등을 멀리서 바라볼 땐 참 아름다워요.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생업의 현장일 뿐이죠. 집어등 빛이 너무 밝아서 어부들의 얼굴이 다 탈 정도라고 해요. 설치작품 역시 멀리서 보면 화려한 샹들리에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기름 때와 같은 노동의 흔적을 담고 있어요."
5전시실은 외부 빛을 차단하고, 가운데 공간을 물로 채웠다. 관람객이 들어서면 어둠 속에서 집어등의 파란 불빛이 서서히 나타나고 진자 운동을 시작한다. 집어등에서 떨어지는 물과 그로 인해 생기는 파동, 변화하는 빛은 끊임없이 공간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깜깜한 바다와 같은 짙은 물의 파장, 그 위를 비추는 노란 빛의 산란은 제주 바다의 풍경을 옮겨온 것만 같다. 10분 가량 이어지는 작품이기에, 작가는 편하게 앉아서 감상하길 권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는 지금의 내 상태를 바라보고, 다음으로의 도약을 위한 '잠시 멈춤'이라고 할 수 있다"며 "관람객도 오랜 시간을 두고 바라봐야 하는 작품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사회는 정보가 너무 많고, 바쁘고 정신 없고, 조급하다. 관람객들이 전시장에서 뭔가를 꼭 얻어가려하기보다, 다 내려두고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전시는 12월 19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