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미술사연구자
강원도 통천군 해안에 문기둥 같은 바위 사이로 길이 있어 이 바위를 문암이라고 했다. 관동팔경에 꼽힐 정도의 명소는 아니었으나 서울 출신인 겸재(謙齋) 정선에게는 넘실대는 바닷물이 바로 옆에서 덮쳐올 듯한 이곳을 지나간 경험이 특별했던 듯하다. 문암 사이에서 파도를 쳐다보는 지팡이 짚은 인물에게 그런 감동을 담은 듯.
정선의 호쾌한 필(筆)법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통천문암'은 지금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전시 중이고, 박진감 넘치는 묵(墨)법의 '인왕제색도'는 지금 런던 영국박물관에 걸려있다. '인왕제색도'는 76세에 그렸고, '통천문암'은 최만년의 명작이다. 두 작품은 '만익공묘(晩益工妙)', 나이 들수록 필치가 더욱 오묘하다고 한 진정한 대기만성의 대가가 정선임을 확인시켜 준다.
정선은 30대부터 금강산과 강원도의 바닷가 명소를 답사하고 그림으로 그렸지만 금수강산의 결정체인 금강산과 동해바다의 감동을 회화로 온전히 완성한 것은 70대 이후이다. 40여 년 걸렸다. 우리 산천을 그리는 전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회화와 화론은 한자문화권의 중심국이자 사대(事大)의 대상인 중국의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수용하며 공유재산으로 인정하는 입장이었고, 화가들의 교과서인 화보(畵譜)도 중국적이어서 조선의 자연과 경치가 회화미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정선은 우리강산 고유의 국토미를 자신만의 주제 의식과 화풍으로 실천한 진경산수를 개척하고 완성해낸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정선과 이웃사촌이었던 문인화가 관아재(觀我齋) 조영석은 "우리나라의 산수를 그리는 것은 정선으로부터 비로소 개벽됐다"라고 선언하며 그 이유로 우리 산을 직접 마주해 사생한 점, 조선 곳곳의 산과 물의 형태를 직접 파악한 현장 체험이 많은 점, 사용한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로 공력을 쌓은 점을 들었다.
붓 다루는 솜씨를 수련하는 일을 필총(筆塚), '붓 무덤'으로 은유한다. 종이나 비단을 스칠 뿐인 붓을 붓털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쓰고 버린 것이 수북하게 쌓일 만큼의 각고면려가 있었기에 정선은 눈으로 보며 가슴으로 느낀 감동을 자신의 손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정선은 진경산수로 산수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정선이 화종(畵宗), 화성(畵聖)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