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보이스피싱 환급 길 열렸다…1일부터 거래소 계정도 즉시 동결

입력 2026-10-13 17: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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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도 금융회사로 편입…의심 계정 지급정지·피해자산 환급 의무 코인 원물 또는 매도 현금 선택…해외 거래소·개인지갑 전송은 사각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은행을 거쳐 가상자산거래소로 들어가 코인으로 바뀌면 법적 구제가 막혔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 보이스피싱 환급 절차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1일부터는 다르다.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시행되면서 가상자산거래소도 은행과 똑같이 의심 계정을 바로 묶고, 남은 자산을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 코인으로 빠져나가면 못 잡던 돈

보이스피싱 피해는 지난해 역대 최대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손명수 의원실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5년 피해액은 1조2578억원으로 2년 전의 2.8배다. 1인당 평균 피해액도 10년 사이 여섯 배 넘게 불어 5000만원을 넘겼다.

돈을 묶어도 돌려주기는 어려웠다. 지난해 금융권이 지급정지한 사기이용계좌는 10만건을 넘겼지만, 피해자 손에 돌아간 비율은 26.3%에 그쳤다. 범인이 돈을 계좌에 오래 두지 않기 때문이다.

빠져나간 돈이 향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가상자산거래소다. 범인들은 피해금을 거래소 전자지갑에 넣어 코인으로 바꾼 뒤 해외 거래소나 개인 지갑으로 흩어 보낸다. 경찰은 피해금 44억원을 코인으로 세탁해 해외 거래소로 나눠 보낸 조직을 검거했다. 오피스텔에 불법 장외거래소를 차려 수수료 3%를 떼며 코인을 해외 지갑으로 넘기던 일당도 적발했다.

그런데 종전 법은 환급 대상을 '금전'으로만 정했다. 거래소는 금융회사가 아니어서 지급정지 의무가 없었다. 경찰이 거래소 협조로 계정을 묶어도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법적 절차는 없었다.

◆ 거래소도 '금융회사'…법 이름부터 바뀌었다

개정법은 제명부터 '피해금 환급'을 '피해자산 환급'으로 고쳤다. 가상자산사업자를 금융회사 범위에 넣고, 환급 대상에 가상자산을 추가했다. 코인을 직접 뜯긴 경우는 물론, 현금을 뜯긴 뒤 범인이 코인으로 바꾼 경우도 구제 대상이다.

거래소는 이제 피싱 의심 계정을 발견하면 즉시 거래를 막고, 피해구제 절차를 거쳐 남은 자산을 돌려줘야 한다. 법제처는 "가상자산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가 대폭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시행 전 피해도 구제받을 수 있다. 부칙은 법 시행 전에 벌어진 가상자산 사기라도 거래소 계정에 자산이 남아 있으면 구제 신청을 허용한다.

◆ 코인 그대로 받거나, 팔아서 현금으로 받거나

환급 방식은 시행령이 정했다. 원칙은 원물 반환이다. 사기 계정에 남은 가상자산은 종류와 수량 그대로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피해자가 원하면 거래소가 코인을 팔아 현금으로 돌려준다. 시세 하락이 걱정되는 피해자에게는 현금을 고를 길이 있는 셈이다.

한 계정에 현금과 코인이 섞여 있으면 배분 기준이 필요하다. 이때는 계정을 지급정지한 시점의 시세로 가상자산을 평가해 환급액을 정한다. 매도를 맡을 전담기관은 금융위원회가 지정하는데, 수수료율과 세부 운영 지침은 아직 공고되지 않았다.

◆ 법 없이도 263억 돌려줬지만

법이 생기기 전에도 경찰은 거래소와 손잡고 돈을 찾아왔다. 경찰청이 12일 밝힌 자료를 보면 2023년 9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거래소 전자지갑 1050개와 은행계좌 16만3000개를 역추적했다. 이렇게 피해자 1137명에게 돌려준 돈이 263억7000만원이다.

검사를 사칭한 범인에게 8억5000만원을 뜯긴 70대는 경찰이 코인 지갑을 추적한 끝에 4300만원을 돌려받았다. 경찰 수사정보를 거래소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에 연계해 사전에 막은 계정도 9월 말 기준 7897건, 예방한 피해는 12억원 가까이 된다.

구멍도 드러났다. 거래소 자체 동결에는 기한이 있어 6개월이 지나면 풀린다. 서울경찰청은 이 틈에 사기범이 임의로 처분한 피해금이 30억원대에 이른다고 보고 명의자 130명을 입건했다.

◆ 국내 거래소 밖으로 나가면 여전히 사각

개정법의 지급정지는 국내 거래소 계정에 자산이 남아 있을 때 작동한다. 코인이 해외 미신고 거래소나 메타마스크 같은 개인 지갑, 믹서 서비스로 이미 넘어갔다면 묶을 방법이 없다. 가상자산 분야의 한 전문 변호사는 "피해 가상자산이 개인지갑이나 해외 거래소로 이전된 경우에도 구제 절차가 실효적으로 작동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적용 범위의 경계도 남는다. 코인 리딩방 같은 투자 사기는 환급법상 보이스피싱 정의에 들어가지 않는다. 물품 대리구매나 '노쇼'처럼 거래를 가장한 변종 피싱도 계정 동결과 환급 절차를 밟기 어렵다.

출금 단계도 문제다. 금융당국이 지난 4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5년 6~9월 사기이용계좌의 59%가 출금지연 예외 계좌였다. 피해액의 75.5%인 1705억원이 이 계좌로 빠져나갔다. 한 자금세탁방지 전문가는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세탁 범죄는 어느 한 영역만 단속해서는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와 통신회사가 더 강한 책임을 지도록 무과실 책임을 어떻게 설계할지 계속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시행 열흘이 지났지만 거래소별 피해구제 신청과 계정 지급정지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국내 거래소 밖으로 한 번 빠져나간 코인을 어떻게 붙잡을지는 개정법도 답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