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5000만원·2금융 3000만원 이하, 무담보 연체계좌 90% 대상 지급명령 받으면 2주 안 이의신청…일부 변제·각서는 시효 부활
금융회사가 연체채권을 손실로 처리해 법인세를 줄이고도 법원 지급명령을 되풀이해 10년, 15년씩 빚을 독촉하던 관행이 12일부터 막혔다. 금융위원회가 '조건부 대손인정제'를 담은 대손세칙 개정안을 이날 시행했다. 소액 무담보 연체채권은 대손 인정을 받으면 처음 돌아오는 소멸시효에 맞춰 빚을 털어야 한다.
◆세금은 털고 빚은 남겼다
금융채권의 소멸시효는 상법상 5년이다. 그런데 금융회사가 시효가 끝나기 전 법원에서 지급명령이나 확정판결을 받으면 시효는 10년으로 늘어난다. 10년이 다 갈 즈음 다시 지급명령을 받으면 또 10년이다.
이 사이 금융회사는 같은 채권을 금융감독원에서 대손상각으로 인정받아 손실로 처리했다. 손실로 잡으면 법인세가 줄어든다. 장부에서는 지운 빚을 추심회사가 계속 쫓아다닌 셈이다.
금감원 민원 사례에는 10년 넘게 갚지 못한 대출이 손실 처리됐는데도 추심회사 독촉 전화를 계속 받은 차주가 있다. 연체 뒤 5년이 지났다며 민원을 낸 채무자 A씨 사례도 있다. 금융회사가 이미 지급명령을 받아 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나 있었고, 추심은 적법하다는 답을 받았다.
◆5대 은행에 묵은 빚 27조원
규모는 작지 않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5월 국회 이인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5대 시중은행이 들고 있던 특수채권은 26조7852억원이다. 손실로 처리하고도 추심 대상으로 관리하는 채권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10년 넘게 묵은 채권이고, 15년을 넘긴 것만 5조원에 가깝다. 은행 한 곳이 아니라 다섯 곳의 숫자이고, 저축은행과 카드사는 빠져 있다.
◆어떻게 바뀌나
새 제도는 개인 무담보 연체채권 가운데 은행·보험사는 5000만원 이하, 저축은행·여신전문금융회사·상호금융은 3000만원 이하에 적용된다. 계좌 수로 보면 전체 무담보 연체채권의 90% 이상이 들어온다.
금융회사는 대손상각을 신청할 때 신청서에 시효완성 예정일을 적는다. 그날이 오면 시효를 완성시키거나 채권을 포기해야 한다. 추가 지급명령으로 시효를 늘리는 길은 원칙적으로 닫혔다.
올해 4분기 대손상각 신청분부터 바로 적용된다. 4분기 신청은 다음 달 30일까지 받는다. 다만 채무자의 은닉재산이 발견되거나 파산·회생 절차가 진행 중일 때, 채무조정을 이행하고 있을 때는 예외로 시효 연장을 허용한다.
◆팔아넘겨도 의무는 따라간다
빚을 대부업체 등에 팔아 의무를 피하는 길도 막았다. 조건부로 대손 인정을 받은 채권을 매각하면 시효완성 의무가 양수인에게 그대로 넘어간다. 매각계약서에 이를 명시해야 하고, 원래 채권을 갖고 있던 금융회사가 양수인의 이행 여부를 점검해 보고해야 한다.
업권별 소멸시효 관리 모범규준도 함께 고쳤다. 이미 시효를 연장한 채권은 3년이 지나면 차주의 상환능력을 다시 평가하고, 갚을 능력이 없으면 채권을 포기할 수 있게 했다. 금융회사별 채권 포기·채무조정·매각 실적은 내년 6월 말부터 협회를 통해 반기마다 공시된다.
◆1만원이 빚을 되살린다
제도가 바뀌어도 채무자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법원 지급명령이 집에 오면 송달일부터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그냥 두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겨 시효가 늘어난다.
시효가 지난 빚이라도 일부를 갚거나 갚겠다는 각서를 쓰면 시효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 죽은 빚이 통째로 되살아난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에는 추심업체가 시효 완성 사실을 숨긴 채 1만원만 내라고 유도한 뒤 전액 추심을 재개한 상담 사례가 있다.
◆남은 쟁점
금융권 실무진은 갚을 능력이 있는 차주가 일부러 시효 완성을 기다리는 도덕적 해이를 걱정한다. 금융위원회는 은닉재산 검증 같은 사후 관리로 걸러내겠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소비자단체는 채무자가 지급명령 우편물을 받지 못해 공시송달로 시효가 늘어나는 관행을 끊으려면 소송촉진특례법의 공시송달 특례를 없애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같은 자료를 보면 이 특수채권에 묶인 채무자는 60만8028명이다. 이 가운데 개인이 52만명이다. 10년 넘게 묵은 채권만 금액으로 13조1300억원이다.
독촉 연락 자체에도 한도가 있다.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은 채권별 추심 연락을 7일 동안 7회로 제한한다. 이 횟수를 넘긴 독촉은 법이 금지한 추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