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시댁 부모 4순위서 세대주 부모와 동순위로, 나이순 기재 상세 발급 땐 용도·목적 적어야…은행·학교 요구 서식은 미정
재혼 가정 학부모가 아이 전학 서류로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자녀란에 '배우자의 자녀'라고 찍혔다. 학교에 재혼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도 종이 한 장이 먼저 말해 버렸다. 오는 29일부터 이 글자가 등본에서 사라진다. 세대주의 배우자를 뺀 가족은 모두 주민등록등본 세대원으로 적힌다.
◆ 배우자만 남고 나머지는 '세대원'
개정 주민등록법 시행령(대통령령 제36282호)은 지난 4월 공포돼 29일 전국에서 시행된다. 핵심은 등·초본의 '세대주와의 관계'란이다. 지금은 '자녀' '배우자의 자녀' '부' '배우자의 모' 식으로 관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앞으로 일반 발급에서는 배우자만 '배우자'로 남는다. 자녀·부모·형제자매 등 민법상 가족은 누구 쪽이든 '세대원' 한 가지로 통일된다. 민법 제779조가 정한 가족 범위에 들지 않는 사람은 지금처럼 '동거인'으로 구분된다. 새 표기는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29일 발급분부터 자동 적용된다.
◆ 처가·시댁 부모, 4순위에서 세대주 부모와 나란히
표기만 바뀌는 게 아니다.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식구를 적는 순서도 바뀐다. 지금은 세대주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즉 장인·장모나 시부모, 배우자가 데려온 자녀가 4순위로 밀려 있었다. 사위·며느리 쪽 가족이 서류상 뒤에 놓인 셈이다.
29일부터는 배우자의 직계존비속이 세대주의 직계존비속과 같은 순위가 된다. 같은 순위 안에서는 누구 쪽 가족인지 따지지 않고 나이순으로 적는다. 행정안전부는 이를 가족 서열화를 없애는 조치로 설명한다.
◆ 일반과 상세, 뭘 떼야 하나
발급은 '일반'과 '상세' 두 가지로 나뉜다. 제출처가 따로 요구하지 않으면 일반이 기본이다. 부모·자녀 같은 구체적 관계가 꼭 필요하면 상세를 골라 종전 방식대로 뗄 수 있다. 다만 상세를 신청할 때는 신청서에 용도와 목적을 적어야 한다. 사생활 노출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장치다.
현장에서는 혼선을 걱정한다. 부양가족 증빙, 상속, 금융기관 심사처럼 친족 관계 자체를 확인해야 하는 업무에서는 '세대원' 한 단어로 입증이 안 된다. 일반 등본을 냈다가 반려돼 상세로 다시 떼거나 가족관계증명서를 추가로 요구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일선 민원창구의 안내다. 등본을 떼기 전에 제출처에 어떤 서식을 받는지 묻는 편이 확실하다.
◆ 외국인 가족 이름은 한글·로마자 병기
외국인 가족의 성명은 로마자만 적던 데서 한글과 로마자를 함께 적는 쪽으로 바뀐다. 행안부가 든 사례는 등본의 로마자 이름과 가족관계증명서의 한글 이름이 달라 공공 지원을 신청할 때 같은 사람임을 증명하기 어려웠던 외국인 거주자다.
외국인 본인만 할 수 있던 주민등록 정정 신청도 같은 세대원이 대신할 수 있게 된다. 전입신고 때 행정정보 공동이용에 동의하면 건물 등기부등본을 내지 않아도 된다.
◆ 2451만 세대의 서류, 열 집 중 네 집은 1인 세대
지난달 말 기준 전국 주민등록 세대는 2451만여 세대다. 등본은 이 모든 세대가 전입·입학·대출·복지 신청 때 가장 자주 떼는 서류다.
가족 모습도 달라졌다. 지난해 말 기준 1인 세대가 전체의 42.3%다. 재혼·다문화 가정까지 한 장의 서식에 담기에 '배우자의 자녀' 같은 꼬리표가 더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개정의 배경이다. 행안부와 성평등가족부,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은 지난달 협약을 맺고 전국 245개 가족센터에서 재혼·다문화 가정에 바뀐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2일 공개한 주민등록 인구 및 세대현황을 보면 9월 말 전국 주민등록 인구는 5108만2431명이다. 세대 수는 인구보다 가파르게 움직여 왔다. 같은 부처가 지난 8월 펴낸 2026 행정안전통계연보에서 2025년 말 전국 세대는 2430만87세대로, 한 해 전보다 늘었다.
세대를 이루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3월 발표한 2025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혼인은 24만건으로 전년보다 8.1% 늘었다. 이혼은 8만8000건으로 전년보다 3.3% 줄었다.
◆ 남은 고비는 서류를 받는 쪽
제도는 29일 바뀌지만 서류를 받는 쪽이 어떤 서식을 요구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은행 대출 심사, 청약 자격 확인, 학교 전학 서류에서 일반 등본을 그대로 인정할지, 상세나 가족관계증명서를 계속 요구할지는 기관마다 다를 수 있다.
제출처가 관행대로 구체적 관계를 요구하면 민원인은 용도를 적고 상세를 떼야 하고, 사생활 보호라는 개정 취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시행 당일 주민센터 무인발급기와 정부24 화면이 새 서식을 그대로 띄우는지도 29일에야 확인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