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이 소환한 매일신문의 그날

입력 2026-10-12 23:28:17 수정 2026-10-12 23: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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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 영화 속 신문사 탄압 장면, 매일신문 70년전 권력의 필화사건 소환
정론직필 매일신문, 오늘의 권력 자화상 생생히 기록으로 남기겠다.

학생을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써 법정에 선 최석재 전 매일신문 주필. 매일신문 DB
학생을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써 법정에 선 최석재 전 매일신문 주필. 매일신문 DB

임상준 서부지역취재본부장
임상준 서부지역취재본부장

영화 '암살자'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뜻밖에도 매일신문의 70여 년 전 역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 속 가상 신문 '동성일보'가 겪는 언론 탄압이 1955년 매일신문의 수난사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권력기관의 감시와 압박, 신문 제작을 방해하는 장면은 권위주의 시대 언론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윤전기에 모래를 뿌리는 듯한 장면은 실제로 매일신문사에 벌어진 테러를 연상시킨다. 영화와 현실은 다르지만, 권력이 언론을 침묵시키려 했던 역사는 스크린 밖에도 있었다.

1955년 9월 13일자 매일신문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측근인 임병직 대사의 대구 방문 환영행사에 학생들이 동원된 일을 비판했다. 공부할 학생들이 폭염 속에서 몇 시간씩 길가에 서 있어야 했던 현실을 보고, 최석채 주필은 권력의 잘못을 신문 지면에 썼다.

이튿날인 9월 14일 오후 4시, 당시 대구 태평로에 있던 매일신문사에 20여 명의 괴한들이 곤봉과 망치를 들고 들이닥쳤다. 윤전기와 통신시설을 부수고 직원들을 폭행했다. 당일 발행된 신문도 빼앗아 갔다. 신문사는 사전에 피습 정보를 입수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보호받지 못했다.

더 기막힌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폭력을 당한 매일신문이 오히려 죄인이 됐다.

테러 사흘 뒤, 당시 경북경찰청 사찰과장은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정작 최 주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물론 훗날 대구지법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확정 무죄 판결을 받았다.

괴한들의 테러로 폐허처럼 변한 매일신문 공무국 내부 모습. 납 활자를 보관하던 문선대가 파괴되고 활자들이 바닥에 쏟아져 있다. 매일신문DB
괴한들의 테러로 폐허처럼 변한 매일신문 공무국 내부 모습. 납 활자를 보관하던 문선대가 파괴되고 활자들이 바닥에 쏟아져 있다. 매일신문DB

영화를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의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매일신문 테러사건과 최 주필의 무죄 판결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다. 권력이 신문사를 습격하고 사설을 쓴 언론인을 법정에 세웠다는 사실은 영화의 해석과 별개로 기억돼야 한다.

그날(?)의 역사와 기록은 우리만의 자부심이나 자랑으로만 소비할 일은 아니다.

이 땅의 모든 언론이야 말로 권력의 감시견(watch dog)으로서 진실을 기록해야 하는 무거운 책무를 갖기 때문이다.

그날의 권력은 과거가 됐다.

그러나 매일신문의 사설과 무죄 판결은 과거-현재-미래에도 남는다. 지금의 권력도 지나간다. 창간 80돌을 맞은 매일신문은 70년 전과 똑같이 오늘의 권력 자화상에 대한 팩트를 생생히 적어 나갈 것이다. '땀과 사랑으로 겨레의 빛이 되리'라는 사훈(社訓)을 가슴에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