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페스트 연구원 사망 9일째…WHO "원인 병원체 밝혀라"

입력 2026-10-11 23: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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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극동 페스트 연구소 시필로바(28) 사망 9일째 공식 사인 '원인불명 폐렴'…미 전직 당국자 "검사 결과 이미 있을 것"

러시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인근 셸레호프에 위치한 시베리아·극동 페스트 연구소 전경을 항공 촬영한 모습. 연합뉴스
러시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인근 셸레호프에 위치한 시베리아·극동 페스트 연구소 전경을 항공 촬영한 모습. 연합뉴스

러시아 시베리아·극동 페스트 연구소 연구원 다리야 시필로바(28)가 원인불명의 폐렴으로 숨진 지 9일이 지나도록 러시아 당국이 정확한 사망 원인 병원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시필로바는 지난달 25일 연구소에서 작업하던 중 페스트균이 든 시험관을 깨뜨린 뒤 원인 미확인 폐렴 진단을 받고 입원했으며, 10월 1일에서 2일로 넘어가는 밤에 숨졌다. 그의 공식 사인은 현재까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폐렴'으로 남아 있다.

시필로바는 페스트균을 비롯한 위험 병원체를 다루는 업무를 담당하던 연구원이었다. 러시아 보건 당국은 시필로바의 유해 검사에서 연구소가 다루던 위험 병원체와 페스트균이 모두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소에 대한 두 차례 조사에서도 병원체 유출 등 비상 상황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보건감독청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는 시필로바와 접촉한 약 200명을 대상으로 방역 조치를 시행했다. 이르쿠츠크 지역 접촉자들을 상대로 수천 건의 검사를 진행했으며, 일부 접촉자에서 감기와 코로나19 양성이 나왔지만 위험 감염병 병원체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추가 감염 사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천 건의 검사가 이뤄진 뒤에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러시아 당국의 정보 공개를 둘러싼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검사 기술을 고려하면 러시아 당국이 이미 원인 규명을 위한 유전체 분석을 마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백악관 공중보건 당국자를 지낸 라지 판자비는 "이미 검사를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시필로바의 폐렴을 일으킨 원인 병원체에 대한 확인을 러시아 측에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WHO에 일부 정보를 제공했지만, 어떤 검사가 진행됐는지 등 WHO의 주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WHO는 러시아 측으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해 자체적인 위험 평가를 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마리아 밴커코브 WHO 유행병·팬데믹 관리 책임자는 기자회견에서 "페스트가 원인에서 배제됐다면, 실제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 사건을 "매우 면밀히, 시간 단위로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시필로바가 근무한 이르쿠츠크 연구소가 생물무기 연구를 했다는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내에서는 러시아가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정보당국의 기존 평가 때문에 이번 사건을 더욱 민감하게 보는 시각이 있다.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사건을 러시아의 생물무기 연구와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 함부르크대 평화연구·안보정책연구소의 알렉산더 한 선임연구원은 "정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곧바로 악의적인 행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며 위험 병원체를 연구해야 할 정당한 공중보건상의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시필로바의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균주가 항생제 치료에 내성이 있다거나 해당 연구소가 생물무기를 연구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러시아 당국이 언제 사망 원인을 공식 발표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