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 부실차주 원금 90% 탕감, 거치 3년·분할 20년 신청 다음 날 추심 중단…가상자산 심사·고의연체 검증 깐깐
저소득 자영업자는 이제 원금의 90%까지 털어내고 남은 빚을 20년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다. 창업 시점 요건도 지난해 6월까지로 풀려 비상계엄 이후 문을 연 가게까지 들어온다. 소상공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얘기다.
신청은 올해 12월 말 닫힌다. 지난 3월 말 기준 누적 신청액은 30조원을 넘었고 신청자는 19만명을 웃돈다. 문이 넓어진 만큼 들어오는 사람도 늘었다.
◆ 창업 시점 2025년 6월까지…새출발기금 신청자격 완화
지원 대상은 코로나 시기인 2020년 4월부터 지난해 6월 사이에 사업을 한 소상공인·자영업자다. 종전엔 2024년 11월까지 창업한 사람만 받았는데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9월 기간을 늘렸다.
조정받을 수 있는 빚은 1인당 최대 15억원이다. 담보채무 10억원, 무담보채무 5억원까지다. 금융위원회는 "자영업자의 채무부담을 보다 폭넓게 줄여주고 신속히 지원하기 위해 이번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 1억원 이하 저소득은 원금 90% 감면
핵심은 감면율이다. 총채무 1억원 이하이고 소득이 중위소득의 60%에 못 미치는 부실차주는 무담보채무 원금을 최대 90%까지 깎아준다. 종전 상한은 80%였다.
갚는 기간도 두 배로 늘었다. 상환기간은 최장 10년에서 20년으로,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은 최대 1년에서 3년으로 길어졌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든 예시를 보면 빚 8000만원을 진 저소득 차주는 원금 800만원만 남기고 이를 최장 20년간 나눠 낸다.
이미 약정을 맺은 사람도 기준에 맞으면 소급해 추가 감면을 받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6월 기존 약정자 10만1000명이 대상이라고 발표했다. 취업·재창업 공공 교육을 마치면 감면율을 최대 10%포인트 더 얹어준다.
다만 감면은 빚에서 보유 재산을 뺀 순부채에만 적용된다. 재산이 있으면 감면율은 크게 낮아지고, 재산을 일부러 숨기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 연체 30일 이하면 원금 대신 금리를 깎는다
새출발기금은 연체 기간에 따라 두 갈래로 나뉜다. 석 달 넘게 연체한 부실차주는 기금이 채권을 사들여 원금을 줄여주는 '매입형'으로 간다. 연체 30일 이하인 부실우려차주는 원금은 그대로 두고 금리를 낮추고 만기를 늘리는 '중개형'이다.
중개형의 조정 금리 상한은 연 9%에서 3.9~4.7%로 내려왔다. 여기에 1년씩 성실하게 갚을 때마다 금리를 10%씩 더 내려준다. 최대 4년간 적용되고 하한은 연 3.25%다.
매입형에도 올해 3월 인센티브가 생겼다. 1년 이상 성실 상환한 뒤 남은 빚을 한꺼번에 갚으면 그 잔액의 최대 10%를 추가로 감면한다.
◆ 신청 다음 날 추심 중단…갈아타기 순서
신청을 마치면 다음 날부터 대상 채권의 추심과 강제집행이 멈춘다. 중개형은 금융회사 한 곳만 동의해도 우선 약정을 맺을 수 있고, 이후 매입형으로 넘어가는 길도 열려 있다.
대가도 있다. 약정을 맺으면 채무조정 정보가 최장 2년간 공공정보로 등록돼 신용카드 신규 발급과 추가 대출이 막힌다. 심사도 깐깐해졌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5대 거래소의 가상자산 보유 내역을 조회하고 있다. 이달 말에는 비상장주식까지 전수 조사하는 재산심사 강화안을 시행한다.
◆ 평균 감면율 74%…"성실 상환자가 손해" 논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국회 정무위원회 박준태 의원실에 11일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8월 말 기준 매입형 약정자의 평균 원금 감면율은 74%다. 차주 한 명당 평균 채무원금은 9150만원, 감면액은 약 6800만원이다.
약정 전 평균 연체기간은 10.9개월이었고 그동안 부담한 연체이자는 1030만원이었다. 감면액이 연체이자의 여섯 배를 넘는 셈이다. 고의로 연체한 것 아닌지 들여다보는 심사 대상은 3년 전 92명에서 올해 8월 362명으로 네 배 가까이 늘었다.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빚 탕감 정책은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꾸준히 빚을 갚아 온 성실 채무자에겐 역차별이 된다"고 말했다.
◆ 중개형은 열에 넷이 탈락…남은 고비
문턱을 넘은 뒤가 더 문제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한민수 의원실에 지난 6일 제출한 자료를 보면 출범 이후 올해 7월까지 약정을 맺은 차주는 14만7217명이다. 이 가운데 2만4374명이 석 달 이상 연체 등으로 약정이 깨졌다. 여섯 명 중 한 명꼴이다.
원금 감면이 없는 중개형이 특히 취약하다. 2022~2024년 중개형 약정자의 44%가 탈락했다. 매입형 실효율이 2023년 24.7%에서 이듬해 13.7%로 떨어진 것과 대비된다. 빚 1억원을 지고 원금 대부분을 감면받고도 경기 침체로 석 달을 내지 못해 협약이 파기된 사례도 있다.
강화된 재산심사는 이달 말 시행되고 접수는 12월 말 끝난다. 그 사이 중개형 차주 열에 넷이 떨어져 나가는 구조를 어떻게 손볼지는 이달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뒤 아직 뚜렷한 해법이 나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