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집권당인데, 관심커녕 도지사 비공개 일정 자료요구에 대략난감."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뜻밖의 심경을 드러냈다.
추미애 지사는 지난 9일 오후 10시 5분쯤 페이스북을 통해 "국회에서 국감을 앞두고 도지사 '비공개 일정'에 대한 자료요구를 한다"며 "비공개 일정은 비밀 일정이 아니다. 도지사에게 일정 비밀이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취임 이후 재정과 복지 부담 등을 거론한 뒤 글 말미에 "명색이 집권당인데, 관심커녕 도지사 비공개 일정 자료요구에 대략난감"이라고 적었다.
추미애 지사가 마주할 첫 시험대는 바로 코앞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오는 13일 오전 10시 경기도청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실시한다. 이후 경기남부경찰청·경기북부경찰청 감사도 이어진다.
지난 7월 1일 취임한 추미애 경기도지사로서는 취임 100일을 갓 넘긴 시점에 치르는 첫 국감이다.
그런데 이번 국감에는 조금 묘한 문제가 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답변석에 앉지만, 질문에 등장할 정책 가운데 상당수는 추미애 도정 100일 동안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100일 된 지사가 받아든 '김동연표 청구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경기도 재정이다.
추미애 지사는 취임 한 달여 만인 8월 5일 경기도의 재정을 '비상 상황'으로 규정했다. 그는 당시 지방채를 발행하고 각종 기금까지 끌어다 쓰면서 위기를 넘겨왔지만 올해 10~12월 필수·민생사업 예산조차 온전히 편성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경기도는 5465억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세입 감소와 늘어나는 복지·재정 수요를 이유로 1300여개 사업의 예산을 손봤다.
그 과정에서 김동연 전 경기도지사가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기회소득과 경기 RE100, 일부 청년정책까지 감액 대상에 올랐다. 추미애 지사는 사실상 전임 도정의 재정운용 방식에 공개적으로 책임을 묻고 있다. 반면 김동연 전 지사 측에서는 경기 침체기에 지방정부가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필요한 선택이었다는 취지로 반박하고 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 이번 국감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다. 추미애 지사가 답해야 할 '현재의 재정상태' 상당 부분은 김동연 도정에서 결정된 예산과 재정운용의 결과라는 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재명표 정책'도 나온다
시간을 한 단계 더 뒤로 돌리면 현직 대통령의 이름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산대교다. 일산대교 무료화는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였던 2021년 본격 추진됐다.
당시 경기도는 일산대교 사업시행자 지정을 취소하는 공익처분을 통해 무료화를 강행했지만 일산대교 측과 법적 분쟁에 들어갔고, 결국 2024년 대법원에서 경기도가 패소했다.
정책은 끝나지 않았다. 김동연 전 지사도 무료화 취지를 이어받았고 올해 1월부터 경기도가 연간 2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승용차 기준 통행료를 1200원에서 600원으로 낮추는 '반값 통행료'를 시행했다.
경기도는 2038년 통행료 징수계약이 끝날 때까지 통행료의 절반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중앙정부와 김포·고양·파주시 등이 분담하도록 해 궁극적으로 완전 무료화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결정은 이재명 도정에서 시작됐고 법원 판단은 김동연 도정에서 확정됐으며, 예산 부담을 안고 정책을 계속 끌고 가야 하는 건 이제 추미애 도정이다.
◆공공기관 이전도 민선 7기→8기→9기 '장기 숙제'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 이전도 비슷한 구조다.
이재명 지사 시절 경기도는 경기 남부에 집중된 공공기관을 북부·동부지역으로 옮기겠다며 15개 기관 이전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부지 확보와 청사 건립, 직원 반발, 비용 문제 등이 겹치면서 실제 이전은 당초 계획보다 늦어졌다. 일부 기관의 이전 일정은 김동연 도정을 지나 추미애 도정까지 이어졌다.
정책을 시작할 때는 '균형발전'이라는 구호가 앞에 있지만 실제 비용과 조직 이전, 지역 간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린다. 도지사는 바뀌어도 정책의 시간은 임기와 맞춰 끝나지 않는 셈이다.
◆4년 전 김동연도 '취임 100일 국감'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데자뷔가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2022년 김동연 지사 역시 취임 약 100일 만에 첫 국감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국감장에서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 건 막 취임한 김동연 지사의 정책보다 전임 이재명 도정이었다.
대장동을 비롯해 전임 도정과 관련된 문제가 집중적으로 소환되면서 당시에는 '김동연 국감이 아니라 사실상 이재명 국감'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어 4년 뒤 거의 똑같은 위치에 추미애 지사가 앉게 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미묘한 정치적 뉘앙스도 엿보인다. 전임자는 이젠 야인이 된 김동연 전 지사이지만, 그 전임자가 현재 청와대에 있는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데 추미애는 국감이 꼭 나쁘기만 할까?
여기서부터는 조금 정치적인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첫 국감을 앞둔 추미애 지사에게 수년 전 정책으로 국감에서 온 도민이, 아니 온 국민이 지켜보는데 국회의원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건 좀 억울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오히려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취임 100일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잘못된 숫자와 정책을 발견해도 "추미애 도정이 만든 문제"라는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오히려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해당 사업이 언제 시작됐고, 누구의 결정이었고, 지금까지 얼마가 투입됐는지를 또박또박 답하며 공식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말하자면 '전임 도정과의 정치적 회계 분리'다.
김동연 도정의 재정운용에서 문제가 발견된다면 김동연 전 지사의 몫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런데 자료를 더 뒤지다 이재명 지사 시절 시작된 정책의 문제까지 발견된다면 이야기는 더욱 미묘해진다.
◆하필 국감 다음 날이 '김지용 청문회'
평소 같았다면 같은 당 소속 현직 지사가 같은 당 대통령의 과거 도정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추미애 경기도지사와 이재명 대통령 사이에서는 전에 없던 긴장감이 감지되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 인선이다.
더구나 일정이 절묘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오는 13일 경기도를 상대로 국정감사를 한 뒤 바로 다음 날인 14일 김지용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연다. 경기도 국감과 중수청장 청문회를 사실상 같은 의원들이 하루 간격으로 진행하는 셈이다.(참고로 경기도는 국회 교통위원회로부터 19일 한 번 더 국감을 받는다)
추미애 지사의 최근 페이스북만 보면 관심의 상당 부분이 이미 14일 청문회를 향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추미애 지사는 김지용 후보자를 두고 "왜곡의 왜곡을 능사로 한 사람을 수사를 잘해야 하는 자리에 앉힌다는 것은 모순의 극치"라고 비판했고, 이후에는 "언제든 국민과 정의에 등 돌릴 수 있는 자"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자신이 법무부 장관 시절 김지용 후보자를 검사장으로 발탁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사람 보는 실력이 형편없음을 고백한다"며 "제가 검사장으로 발탁한 것을 거꾸로 그를 신뢰하는 근거로 삼지 말아달라"고 했다. 청문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는 한동훈 의원 휴대전화 포렌식 비용 문제와 고기영 전 법무부 차관의 과거 행적까지 잇따라 꺼냈다. 김지용 후보자 측은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추미애 지사가 청문회를 앞두고 사실상 '쟁점 예고편'을 연일 내놓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13일 국감은 단순히 경기도정만 검증하는 하루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국감장에서 김지용 후보자를 직접 거론할 수도 있고, 국감장 안팎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방식으로 다시 메시지를 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굳이 김지용 후보자의 이름을 꺼내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전임 도정의 잘못은 전임자의 책임이라고 선을 긋고, 현직자가 과거의 잘못된 판단까지 대신 떠안을 이유는 없다는 논리를 펼치는 순간, 그 메시지는 하루 뒤 청문회를 앞둔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문제와도 자연스럽게 겹쳐질 수 있다.
◆'이재명표 실책' 인정하면 하루 뒤 청문회에도 메시지
그래서 이번 국감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정책 숫자 자체보다 추미애 지사의 답변 방식일지도 모른다.
가령 일산대교 문제를 묻는 질문에 "정책 취지는 옳았다"고 적극 방어할 수도 있다. 반대로 대법원 패소와 지금까지의 예산 투입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며 "당시 결정은 당시 도정의 판단이고 이제는 현실적인 해법을 찾겠다"고 선을 그을 수도 있다. 공공기관 이전이나 다른 장기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후자를 택한다고 해서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올해는 그 발언이 나오는 날짜가 중요하다. 13일 추미애 지사가 "전임자의 판단은 전임자의 책임"이라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불과 하루 뒤인 14일 국회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명한 김지용 후보자의 적격성을 따진다. 정치적으로는 두 장면이 분리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김지용 후보자가 과거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검사장으로 승진했다는 점 등을 들어 여권 내 '친윤 검사' 비판에 직접 반박했다. 이에 추미애 지사는 자신의 과거 발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지금의 신뢰 근거로 삼지 말라"고 다시 맞받았다.
이를 경기도 국감에 대입하면 논리는 묘하게 닮는다.
"내가 이어받았다고 해서 전임자의 판단까지 옳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한 번 판단했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 판단을 계속 책임질 이유도 없다."
추미애 지사가 13일 이재명 도정 때 정책을 놓고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그 자체로 14일 김지용 후보자 청문회를 앞둔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중수청장 인선을 놓고 이미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온 추미애 지사가 이재명 도정 때 불거진 정책 비용 낭비나 부작용까지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면 "과거의 이재명도, 현재의 이재명 인사도 성역으로 두지 않는다"는 상당히 강한 그림이 만들어질 수 있다.
◆국감은 '털고 가는 자리'이자 청문회 전날의 무대
추미애 지사에게 첫 국감은 전임 도정과 책임선을 긋는 '털고 가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취임 100일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문제의 발생 시점과 책임 소재를 국감장에서 분명히 해두면 이후 자신의 도정과 구분하기도 쉬워진다.
더구나 13일 국감 바로 다음 날인 14일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청문회가 열린다. 추미애 지사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김지용 후보자를 연일 비판해왔다. 따라서 이날 국감은 경기도정을 방어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청문회 직전 전국의 카메라가 추미애 지사를 비추는 정치적 무대이기도 하다.
직접 김지용 후보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전임자의 판단과 현직자의 책임을 구분하고, 잘못된 결정에는 같은 당 전임자라도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논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김지용 인선에도 겹쳐 읽힐 수 있다.
결국 관전 포인트는 추미애 지사가 김동연 전 지사와 이재명 대통령의 도정 가운데 무엇을 끌어안고 무엇을 털어낼지다. 그리고 그 책임론이 하루 뒤 김지용 후보자 청문회까지 어떤 정치적 여운을 남기느냐다.
13일 국감장에는 추미애 지사 한 명이 앉지만, 그 성적표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이름도 함께 적힐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