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운전자 면허반납 50만원 줘도 반납률 2.5%…야간·고속도로 제한 '조건부 면허' 온다

입력 2026-10-10 07: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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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령운전자 사고 사망 843명, 4년 새 사고 44% 늘어 천안 반납자 중 실제 운전자 16.9%…경찰청 2027년 하반기 조건부 면허 목표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단풍이 내려오는 10월과 11월은 고령 운전자에게 가장 위험한 달이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통계분석 보고서(2022년)를 보면 65세 이상 운전자 사고는 10월에 연중 가장 많고, 11월이 그 뒤를 잇는다. 나들이 차량이 늘어나는 계절에 지자체들은 최대 50만원 혜택을 내걸고 고령운전자 면허반납 유도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전국 반납률은 2.51%다.

◆ 사고 4건 중 1건이 고령 운전자

경찰청 집계로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4만5천873건이다. 1년 전보다 8% 넘게 늘었고, 2021년과 비교하면 44% 급증했다. 사망자는 843명으로 한 해 만에 10% 넘게 불었다.

전체 사고에서 고령 운전자 사고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15.7%에서 지난해 23.7%로 올라섰다. 네 건 중 한 건꼴이다. 면허를 가진 65세 이상 인구가 같은 기간 401만명에서 563만명으로 40% 넘게 늘어난 탓이 크다.

◆ 울주군 50만원, 한 달 만에 430명 몰렸다

지자체 지원금은 대개 교통카드 10만~20만원 선이다. 서울시는 70세 이상 반납자에게 교통카드 10만원을 준다. 이 틀을 깬 곳이 울산 울주군이다.

울주군은 65세 이상 반납자에게 시비 10만원에 군이 온누리상품권 40만원을 얹어 모두 50만원을 지급한다. 지원금을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리자 시행 첫 달에만 430명이 신청했고, 전년 한 해 실적을 한 달 만에 넘어섰다. 울주군은 "이 추세라면 연말까지 지난해의 네 배 이상 반납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구와 부산 연제구는 돈을 주는 방식을 바꿨다. 강남구는 70세 이상 가운데 자동차보험 가입을 증명한 '실제 운전자'에게 구비를 더해 최대 50만원을 준다. 연제구는 75세 이상에게 기본 지역화폐를 주고, 실제 운전을 증명하면 현금 30만원을 따로 얹는다.

◆ 반납한 열에 여덟은 '장롱면허'

차등 지급이 번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지난해 8월 낸 2024회계연도 결산 검토보고서를 보면 실태가 드러난다. 충남 천안시에서 그해 면허를 반납한 사람 중 실제 운전자는 16.9%에 그쳤다. 나머지 열에 여덟은 이미 운전대를 놓은 사람이 지원금만 받아 간 셈이다.

반납률이 제자리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찰청 자료로 전국 고령 운전자 반납률은 2021년 2.09%에서 지난해 2.51%까지 5년 내내 2%대를 맴돌았다. 지난해 반납자는 14만여 명이다.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서울연구원은 서울시 반납 사업의 비용편익비를 6.57로 산출했고, 반납률이 1%포인트 오르면 고령자 사고가 연간 203건 줄 것으로 봤다. 군산대 연구진은 고령자 한 사람이 면허를 내놓으면 한 해 사회적 비용 약 42만원이 절감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돈을 받고 반납하는 사람이 사고를 낼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 농촌 어르신 열에 아홉 "못 돌려준다"

정작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사람은 반납할 수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실태조사(2026년)에서 면허를 가진 65세 이상 농업인의 94.8%는 반납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밭에 나가고 장에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하는데 버스가 없다는 것이다.

생계가 걸린 사람도 많다. 2024년 말 기준 운수업 종사자 81만여 명 가운데 65세 이상이 넉 명 중 한 명이다. 이들에게 일률적인 반납 유도는 이동권과 생계를 함께 끊는 일이라고 농촌경제연구원은 지적한다. 대한노인회 등 노인 단체도 나이만으로 운전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반발해 왔다.

◆ 밤과 고속도로만 막는 '조건부 면허'

그래서 나온 대안이 조건부 면허다. 경찰청은 2027년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검토 중인 조건은 야간 운전 금지, 고속도로 운전 금지, 안전장치 부착 등이다. 면허를 통째로 거두는 대신 위험한 상황만 걸러내겠다는 구상이다.

기준을 만드는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은 올해 2월부터 운전능력진단시스템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연령 대신 신체·인지 능력을 실측해 조건을 붙이는 방식을 제안했다. 첨단운전자보조장치를 단 차량에 한해 운전을 허용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꼽았다.

남은 고비는 법이다. 조건부 면허의 근거가 될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다음 달 국회 상임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 경찰청은 연말까지 가상현실 기반 평가 시스템의 실증을 마칠 계획이다.

교통안전 분야의 한 전문가는 조건부 면허 도입의 필요성을 짚었다. 그는 "고령자 면허 반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운전을 허용하는 대신 조건부 면허를 주는 게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