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사교육비 10년 새 1.8조원…"뒤처질까봐" 멈추지 못하는 아시아 부모들

입력 2026-10-09 19: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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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초등 학부모 90%가 "너무 많다"고 하면서도 지출은 오히려 늘어…한국은 사교육 경쟁이 출산율까지 끌어내려

싱가포르 가정이 2023년 사교육에 쏟아부은 돈이 18억 싱가포르달러(약 1조 8천억원)에 달한다. 2013년 11억달러, 2018년 14억달러에서 10년 사이 64% 급증한 수치다.

싱가포르 정책연구소(IPS)가 초등학생 학부모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10명 중 9명은 자녀가 사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10명 중 7명은 여유가 생기면 사교육비를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절반가량은 다른 학부모들 때문에 압박을 느낀다고 했다.

싱가포르에 사는 38세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대표 그레이스는 아이 둘을 세 살 때부터 중국어 과외에 등록했다. "부모 중 누구도 집에서 유창한 중국어를 쓰지 않는다. 어느 정도 압박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레이스의 두 아이는 현재 네 살, 일곱 살이다.

아시아 전역에서 부모들은 자녀에게 학업 우위를 주기 위해 사교육에 계속 투자하고 있다. 어린 학습자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와 사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사이의 격차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사교육이 아이의 필요가 아니라 '다른 집 아이가 더 하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될 때 시작된다. 그때부터 보충 학습은 군비경쟁이 된다. 한 친구가 과외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인기 프로그램은 금세 마감된다. 이미 성적이 좋은 아이에게 두 번째 과외 교사가 붙으면 첫 번째 교사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의 상황은 더 극단적이다. 2023년 한국인이 사교육 시장에 투입한 돈은 총 190억 달러(약 26조원)에 달한다. 6세 미만 아동의 절반가량이 어떤 형태로든 사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참여한 연구에서는 사교육을 통한 부모의 지위 경쟁이 없었다면 평균 자녀 수가 28% 많았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1970~1975년생 여성 기준으로 출산율이 1.92명에서 2.45명으로 늘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지위 경쟁이 강할수록 사교육 지출은 늘고 출산율은 낮아지며, 이런 경쟁은 가구 간에 전파된다는 분석도 있다. 교육 경쟁에 대한 우려가 큰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낮고 하락 속도도 빠른데, 한국과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에서는 소득 1분위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 비중이 8.4%로 5분위(5.1%)보다 오히려 높다.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사교육 시장이 형태와 내용, 가격대 면에서 갈수록 세분화되면서 교육 군비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싱가포르 IPS 선임연구위원 길리언 코는 사교육이 "교육 군비경쟁에서 비롯된 사회적 자원의 순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교육부는 초등학교 졸업시험(PSLE) T점수 폐지, 특정 학년 정기 시험 축소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해 왔다. 2025년 2월에는 당시 교육부 장관 찬춘싱이 학부모의 불안을 부추기는 사교육 업체들을 공개 비판했고, 교육부는 이후 광고업계와 함께 사교육 업체 광고 행동 강령을 마련했다.

한국 정부는 1980년대부터 사교육을 '사회적 악'으로 규정하고 한때 전면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으나, 과외 교사들이 지하로 숨어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받고 수업을 이어갔다. 학원 심야 교습 규제로 상위 15% 가구의 사교육비가 10% 줄면 하위 50%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 비중도 0.4~0.9%포인트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사교육 지출에 세금을 부과해 재원을 마련한 뒤 출산장려금으로 돌려주는 정책이 최적 대안으로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