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떡 싸들고 온 94세 할머니 챙기고, 여노비엔 산후 100일…신문고 막은 관리까지 파면한 세종

입력 2026-10-09 12:32:53 수정 2026-10-09 12: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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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다시 생각해본 세종대왕의 애민(愛民)…글자보다 먼저 백성을 바라본 통치의 마음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10월 9일 한글날이면 대개 훈민정음과 한글의 우수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올해는 글자를 만든 사람, 세종대왕에게 조금 더 시선을 돌려볼 만하다.

훈민정음 창제의 출발점에 "백성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것을 가엾게 여겼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 마음은 글자에만 머무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노인과 노비,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 심지어 감옥의 죄수까지 살폈던 세종대왕의 기록이 곳곳에 남아 있다.

◆94세 할머니가 바친 '마떡 한 동이'…동네 노인들에게까지 선물

1433년 세종 15년 4월, 충남 아산현에 살던 94세 할머니가 세종대왕에게 마로 만든 떡 한 동이를 올렸다.

세종대왕은 이를 받고 할머니에게 음식을 대접한 뒤 면포 두 필과 술 열 병, 여러 물품을 내려줬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소문을 들은 인근 노인들이 이후 채소 등을 가지고 찾아오자 세종대왕은 이들에게도 모두 음식을 대접하고 사정에 따라 물건을 나눠주도록 했다.

누군가의 작은 정성에 왕이 훨씬 큰 답례를 하고, 그 온기가 주변 노인들에게까지 번진 장면이다.

노인 공경은 일회성 미담에 그치지도 않았다.

세종대왕은 80세·90세·100세 이상 노인에게 신분에 따라 품계를 올려주거나 벼슬을 주는 제도를 마련했고, 천인인 노인에게까지 적용 범위를 넓혔다.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여노비 산후 100일 쉬게 하고…남편에게도 30일 휴가

세종대왕의 애민은 당시 가장 낮은 신분이었던 노비에게도 향했다.

관청에서 일하던 여노비는 아이를 낳고 불과 며칠 만에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세종대왕은 갓난아이와 산모가 위험해질 수 있다며 산후 휴가를 100일로 크게 늘렸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봤다.

출산 직전까지 일하다 길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다며 출산 전에도 한 달가량 일을 면제하도록 했다.

1434년에는 한 단계 더 나갔다. 산모만 쉬게 하면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남편에게도 30일 동안 일을 면제하도록 했다.

오늘날 표현으로 바꾸면 출산휴가에서 산전휴가, 배우자 출산휴가까지 생각이 확장된 셈이다.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신문고 막은 관리 파면…"아랫사람 사정이 위에 통하게 하려 만든 것"

1428년에는 사비인 '자재'라는 여성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신문고를 치려다 의금부 관리에게 제지당한 일이 있었다.

세종대왕은 이를 알고 크게 문제 삼았다.

신문고를 만든 이유는 "아랫사람의 사정이 위에 통하게 하려는 것"인데 왜 막았느냐는 취지였다.

결국 신문고 이용을 가로막은 관리들을 파면했다.

호소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그다음 문제이고, 우선 억울함을 말할 통로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노비 함부로 때려 죽이지 말고, 죄수 더위·추위까지 살펴라

세종대왕은 1444년 주인이 노비를 마음대로 때리거나 죽이는 일을 금지하도록 했다.

당시는 노비가 주인의 재산처럼 취급되던 신분제 사회였다.

세종대왕은 왕 자신조차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없다는 취지로 명을 내렸다.

감옥에 갇힌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다.

1448년에는 죄수들이 여름철 더위를 먹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조사하게 했고, 감옥의 위생과 겨울철 냉기를 막기 위한 조치도 마련했다.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생존 조건까지 포기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흉년을 대비해 도토리를 비축하도록 한 기록처럼 먹고사는 문제를 세세하게 챙긴 흔적도 실록 곳곳에 남아 있다.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한글은 어쩌면 세종 '애민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업적 가운데 홀로 떨어져 있는 발명품이 아니다.

노인은 대접하고, 출산한 노비는 쉬게 하고, 억울한 백성에게는 말할 길을 열어주고, 죄수에게도 견딜 만한 감옥을 만들어주려 했던 통치 철학의 연장선에 글자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읽고 쓰지 못해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백성이 많다면 그 문제 역시 통치자가 해결해야 할 생활의 불편이었다.

그래서 한글날에 세종대왕을 다시 보는 일은 단순히 성군 한 사람을 칭송하는 데서 끝날 필요가 없다.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세종대왕 애민 일화. AI로 생성한 이미지

조선은 왕이 백성을 사랑한다는 '애민'을 말하던 왕정 국가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혀 다르다. 국민이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민심을 살피는 것 역시 왕이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과 같은 개념일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600년 가까운 시간을 넘어 온다.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숫자와 제도 뒤에 있는 한 사람의 생활을 얼마나 세밀하게 들여다보는가.

오늘날에는 그것이 선거에서 표로 나타나고, 여론과 국정수행평가로 나타나며, 결국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온다.

한글날 세종대왕에게서 다시 읽어볼 대목은 어쩌면 글자 네모꼴의 아름다움보다 그 글자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을 먼저 바라본 시선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