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달서아트센터 서옥순 초대전 '선(線)과 틈, 실재에 다가서는 흔적들'

입력 2026-10-08 21: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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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바느질 작업에서 나아가
마스킹테이프·도자 작업 전시
"고정된 실체 아닌 변화에 주목
좀 더 자유롭게 풀어나가고자 해"

서옥순 초대전
서옥순 초대전 '선과 틈, 실재에 다가서는 흔적들'이 달서아트센터 달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서옥순 초대전
서옥순 초대전 '선과 틈, 실재에 다가서는 흔적들'이 달서아트센터 달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서옥순 작가.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서옥순 작가. 이연정 기자

달서아트센터가 서옥순 작가의 초대전 '선(線)과 틈, 실재에 다가서는 흔적들'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역 대표 원로·중견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달서 아트 플래닛' 시리즈로 마련됐다.

2023년 갤러리분도에서의 개인전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전시. 작가는 기존의 바느질과 실, 천을 활용한 작업에서 나아가 마스킹테이프를 활용한 평면 회화와 도자 작업 등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독일 유학시절부터 나는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이어왔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며 "나를 둘러싼 사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좀 더 시선을 확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급격히 바뀐 사회를 보며 그는 오랫동안 사유해 온 제행무상(諸行無常), 열역학 제2법칙을 직접 온몸으로 느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은 변화하고, 한 번 일어난 변화는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되돌아갈 수 없다.' 그에게 이 법칙은 단순한 과학적 명제가 아니라 삶과 존재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걸 깨닫고나니, 집착도 분노도 없어지고 너무 자유로워진 느낌이었어요. 작업에서조차도 내가 그간 해온 것에 계속 얽매일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죠. 좀 더 자유롭게 풀어나가자는 생각으로,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쉽게 변하는 흙, 테이프로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작가는 5㎜ 마스킹테이프를 스케치하듯 화면 위에 붙이고, 그 위에 색을 칠한 뒤 다시 테이프를 붙이고 색을 덧입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마지막에 테이프를 떼어내는 순간, 그의 움직임과 층층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테이프가 만들어낸 선은 깔끔하고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테이프의 틈으로 색이 스며들거나 번져, 끊어질 듯하며 다시 이어지는 동시에 시선이 머물 틈을 보여준다.

그는 "마지막에 테이프를 떼어낼 때는 미지의 길을 따라, 마치 보석을 캐내는 듯한 느낌"이라며 "생각지도 못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어 재미있었던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서옥순, 선과 틈_실재에 다가서는 흔적들,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6
서옥순, 선과 틈_실재에 다가서는 흔적들,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6
서옥순, 선과 틈_실재에 다가서는 흔적들,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6
서옥순, 선과 틈_실재에 다가서는 흔적들,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6
서옥순 작가의 작품이 달서아트센터에 전시돼있다. 이연정 기자
서옥순 작가의 작품이 달서아트센터에 전시돼있다. 이연정 기자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선이 모여 만들어낸 형태가 사람의 얼굴과 비슷하다고. 작가는 자화상으로 시작한 작업이지만 누군가의 얼굴일 수도, 혹은 미완의 얼굴일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얼굴은 그가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의 초창기 작업부터 20여 년간 이어온 소재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얼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조동오 달서아트센터 문화기획팀장은 "작가의 화면 속 얼굴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선과 색의 층위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거나 다시 사라지며, 때로는 얼굴인지 아닌지조차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 모호함은 의도된 것이다. 작가에게 얼굴은 특정한 개인의 초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의 자화상이자 타인과의 관계 속에 형성되는 존재의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도자 작품들이 옹기종기 놓였다. 작가는 계획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흙덩어리의 형태를 빚어낸 뒤 초벌하고 가장자리의 선을 따라 색을 입힌다. 마스킹테이프 작품과 도자 작품 모두 가볍고 유연한 선의 움직임으로 채워졌다.

"지금까지 해 온 바느질은 제가 힘들었던 시기에 치유와 정화의 힘을 준 작업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해소가 됐고 제가 서 있는 환경도 많이 바뀌었으니 좀 더 자유롭게, 존재의 변화를 따라 다양한 작업을 해보려 합니다."

조 팀장은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작품을 마주하며 거대한 의미를 반드시 발견할 필요는 없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 하나를 따라가도 좋고, 색과 색 사이의 작은 틈에 시선을 머물러도 좋다"며 "희미하게 드러나는 얼굴을 자신의 모습으로 바라봐도 좋고, 그 얼굴에서 타인의 모습을 떠올려도 좋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이어지며 일요일, 공휴일은 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