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우리가 연결된 모양

입력 2026-10-08 09:37:52 수정 2026-10-08 10: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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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봉 소설가

서효봉 소설가
서효봉 소설가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 훈맹정음(한글점자) 반포 100돌이 겹치는 해다. 묘하게 숫자가 딱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국립한글박물관은 올해를 '한글의 해'로 지정하고 전시, 문화행사, 학술대회도 개최한다.

한편, 교보문고는 한글날을 맞이해 '2026 한글날 프로젝트'를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김애란, 은희경, 최은영 등 작가 7명이 아끼는 우리말을 나누고, 쓰고, 간직하는 한글날 기획전이 열렸다. 굿즈도 다양하게 제작해 판매 중이다. 올해 한글날은 그만큼 특별하다는 의미다.

한글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았다.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한글의 자음은 혼자서는 소리가 되지 못한다. ㄱ은 ㅏ를 만나야 '가'가 되고, ㄴ은 ㅗ를 만나야 '노'가 된다. 모음도 홀로 서지 않는다. 소리 없는 ㅇ이라도 곁에 둬야 비로소 '아'라는 글자가 된다. 한글은 처음부터 자음과 모음이 서로 기대야만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진 글자다.

이번엔 글자의 모양을 살펴보자. 한글은 알파벳처럼 낱자를 옆으로 늘어놓지 않는다. 초성과 중성, 종성이 한자리에 모여 어깨를 맞대고 한 글자를 이룬다. '사람'이라는 두 글자 안에도 다섯 개의 낱자가 서로 기대어 서 있다. 하나라도 빠지면 그 말은 완성되지 않는다.

모음을 만든 원리에도 같은 생각이 담겨 있다. 세종대왕은 하늘을 본떠 점(·)을, 땅을 본떠 ㅡ를, 사람을 본떠 ㅣ를 만들고, 이 셋을 이어 붙여 나머지 모음을 지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서고, 셋이 만나는 자리에서 소리가 생겨난다. 한글의 모음은 세상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의 모양이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 길을 걷다 만나는 것들, 도로의 표지판, 뭔가를 알리는 안내판, 건물에 달린 간판, 굴러다니는 전단지에도 한글이다. 시선을 나에게 옮기면 책에도, 노트북에도, 휴대폰에도 온통 한글이다. 항상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르는 가족처럼 말이다.

어쩌다 해외에 나가 한글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온통 다른 나라 언어로 되어 있는 낯선 곳에서 한국 사람이 발신한 글자를 내 눈으로 수신하는 순간 안도감이 들고 마음이 든든해진다. '우리'라는 글자가 저절로 떠오른다. 난 어쩔 수 없이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글자 뒤에 사람을 생각해 본다. 이 글자를 쓴 사람은 누굴까. 왜 썼을까. 어떤 마음으로 썼을까. 글자는 '나'와 '너'를 연결한다.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그 모양을 통해 '우리'라는 연결된 세계로 들어간다. 어쩌면 우리가 연결된 모양, 그걸 '한글'이라고 부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신도 한글로, 나와 만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