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한글날 앞 저희나라·대인배 지적하며 "공문서는 정확하게"…SNS에선 좌아하게? [시사뒷담]

입력 2026-10-06 12:57:09 수정 2026-10-06 13: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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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글날을 사흘 앞둔 6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갑자기 '우리말 수업'을 펼쳤다.

장례식장의 화환 처분 문제를 보고받던 중 '조화'와 '화환'의 표현을 짚더니, 방송과 정부 공문서 등 공식 언어에서는 국어 문법과 어법을 좀 더 정확히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견해를 이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어 문법에 안 맞는 엉터리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방송 발언이나 정부 공문서 등 공식 언어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저희 나라' '대인배'까지…대통령의 즉석 우리말 교실

이재명 대통령은 흔히 쓰이는 '저희 나라'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우리 국민을 모욕하는 자기 비하"라며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취지로 지적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도 한국인이 대한민국을 가리킬 때는 '우리나라'라는 표현을 권하고 있다.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어서 같은 국민끼리 대한민국을 '저희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인배'도 도마에 올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인배'는 더 나쁜 비하인데 맞는 말인 것처럼 언론 보도에 보인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설명도 비슷한 방향이다. '대인배'는 현실에서 '마음 씀씀이가 넓고 관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배'가 '불량배' '폭력배' '소인배'처럼 주로 부정적 어감의 말에 붙기 때문에 '대인'과의 결합이 조어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다만 언어는 늘 사전보다 먼저 움직이며 사회를 반영한다. '대인배' 역시 실제 사용에서는 이미 긍정적 의미로 굳어진 표현에 가깝다. 그래서 대통령의 이날 발언도 "신조어를 쓰지 말자"라기보다는 방송과 정부 문서처럼 공식성을 갖는 언어에서는 조금 더 정확하게 쓰자는 주문으로 읽힌다.

◆그런데 닷새 전엔 '좌아하게'…이건 괜찮나?

그런데 불과 닷새 전인 1일 이재명 대통령은 X(엑스, 구 트위터)에 정부 국정성과 관련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많이들 함께 해주세요. 좌아하게 말입니다"라고 적었다.

'좌아하게'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 지지층에서 쓰이는 신조어 표현이다. '우아하게'의 '우'(右)를 정치적 좌우의 '좌'(左)로 바꿔, 친명 정치인이나 지지층이 품격 있게 말하고 행동하자는 뜻으로 사용한다.

실제 '좌아'(坐衙)라는 단어가 사전에 있기는 한데, '벼슬아치가 관아에 출근해 있다'는 전혀 다른 뜻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닷새 뒤 "엉터리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고 해서 당장 "좌아하게부터 쓰지 말라"고 되받아칠 일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 이날 "약어 등을 통제하자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공문서에서 쓰는 언어와 SNS에서 지지자들과 주고받는 언어유희는 애초 역할이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 엑스(구 트위터)
이재명 대통령 엑스(구 트위터)

◆'잼통령' '잼칠라' '자나체'…李 지지층의 언어세계

오히려 '좌아하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지지층 사이에서 오래 이어져 온 독특한 언어문화의 최신판에 가깝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름에서 '재명'을 줄인 '잼'과 대통령을 합친 '잼통령' 또는 '잼통', 이재명 대통령과 동물 친칠라를 합성한 '잼칠라'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좋잖아"를 "좋자나", "고맙잖아"를 "고맙자나"처럼 바꾸는 이른바 '자나체'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과거 SNS에서 직접 사용하기도 했다.

지지자들이 정치인에게 붙이는 애칭과 말장난이 다시 당사자의 SNS를 통해 공식 아닌 공식 언어로 되돌아오는 맥락이다.

◆공문서에선 정확하게, SNS에선 '좌아하게'?

그래서 이번 국무회의 발언과 '좌아하게'는 동시대 언어 생활의 묘한 구분과 대비를 드러낸다. 정부 공문서와 방송에서는 "저희 나라" "대인배"처럼 관행적으로 쓰는 표현까지 정확성을 따지면서, SNS에서는 '좌아하게' '잼통령' 같은 새로운 언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인 것.

언어를 글자로 보존하는 것과 새로 만든 언어를 새로운 표현의 글자로 담아내는 게 반드시 대치되는 건 아니다. 표준어와 문법은 공적인 소통의 기준을 만들어주고, 신조어와 언어유희는 시대와 집단의 문화를 보여준다.

다만 대통령까지 언어 문제를 직접 짚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청와대와 정부의 공문서, 브리핑, 대통령 발언도 같은 기준으로 꽤 꼼꼼히 읽힐 수밖에 없다. 말과 글을 다루는 공무원들이 좀 더 긴장하게 됐다. 한글날을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숙제가 국민에게만 향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공식 언어는 정확하게. SNS에선 때론 '좌아하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좌아하게'라는 표기까지 예상했을 리는 없겠지만, 백성이 제 뜻을 쉽게 펴라고 만든 글자가 580년 뒤에도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까지 싫어하진 않았을 듯 싶다.

청와대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연합뉴스
청와대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