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한강·김대중·밥딜런이 노벨상 전화를 받은 순간 [시사뒷담]

입력 2026-10-05 22:25:10 수정 2026-10-05 22: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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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칼 다이서로스, 페터 헤게만, 게오르크 나겔.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2026년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칼 다이서로스, 페터 헤게만, 게오르크 나겔.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걸그룹 아이오아이(I.O.I)의 노래 '갑자기'에 나오는 이 유명한 노랫말처럼,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 칼 다이서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에게는 정말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인생을 바꾸는 전화'가 걸려왔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선정 사실을 알리는 전화는 통상 공식 발표 직전에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서 걸려온다. 때문에 미국 등 먼 지역에 있는 수상자는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 잠을 깨우는 전화로 노벨상 수상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다이서로스 교수처럼 어떻게든 전화를 받은 건 다행인 사례. 아예 연락이 되지 않거나, 공동수상자가 직접 집까지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노벨상 전화가 엉뚱한 사람에게 잘못 걸린 일도 있었다.

◆다이서로스 "잠깐 자려고 누웠는데 전화"

2026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인 다이서로스 교수는 5일 새벽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자택에서 논문 작업과 학생들에게 보낼 이메일 등을 처리하고 있었다. 야행성인 그는 잠시 눈을 붙이려고 침대에 누웠다. 바로 그때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가 스웨덴 현지시간 오전 11시 30분쯤이었던 반면 미국 서부는 오전 2시 30분 무렵이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AP통신에 자신이 실제로 잠든 건 아니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의 다음 일정도 눈길을 끌었다. 잠들어 있는 자녀들이 학교에 가져갈 도시락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앞으로 몇 시간 동안 해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일"이라고 표현하며 아이들을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일상에 대해 전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상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은 직후에도 아버지로서의 아침 일과는 그대로였던 셈이다.

밥 딜런. 연합뉴스
밥 딜런. 연합뉴스

◆밥 딜런은 아예 연락이 안 됐다

가장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포크 음악 전설 밥 딜런은 정반대 사례였다.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스웨덴 한림원이 연락을 시도했지만 정작 밥 딜런과 통화가 되지 않았다. 한림원은 측근을 통해 전화와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직접 대화하지 못했고, 결국 사라 다니우스 당시 한림원 사무총장이 더 이상 적극적으로 연락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까지 했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스웨덴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놀라는 것과 달리, 이 경우에는 노벨상을 주는 쪽이 수상자를 찾아 헤맨 셈이었다. 밥 딜런은 이후 수상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강 작가는 아들과 저녁 식사 마친 직후

한국에서는 시차 때문에 꽤 '인간적인'(?) 저녁 풍경이 만들어졌다.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서울 자택에서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수상 통보 전화를 받았다. 한국 시간으로 저녁 8시 무렵이었다.

한강 작가는 당시 노벨상 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날 책을 조금 읽고 산책을 하는 등 비교적 평온한 하루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세계적인 뉴스의 주인공이 됐지만 거창한 축하 계획도 없었다.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겠다고 했다.

미국 연구자들에게 노벨상 전화가 잠을 깨우는 '새벽의 전화'라면 한국에 있던 한강 작가에게는 평범한 저녁 식사를 끝낸 뒤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전화였다.

한강. 연합뉴스
한강. 연합뉴스

◆김대중 대통령은 TV로 소식을 접해

한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상황이 또한 달랐다.

2000년 10월 13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발표 시각은 한국 시간 오후 6시쯤이었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이희호 여사와 함께 TV를 통해 자신의 수상 소식을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이라는 역사적인 소식은 발표와 동시에 국내 방송 속보를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

누군가는 한밤중 전화로, 누군가는 저녁 식탁에서 막 벗어난 뒤 전화로 노벨상을 알게 됐지만 김대중 대통령에겐 TV 화면 속 자신의 이름이 먼저 역사적인 순간을 알린 셈이다.

김대중. 연합뉴스
김대중. 연합뉴스

◆전화 못 받자 이웃집 공동수상자가 찾아가

노벨상 역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통보 장면 가운데 하나는 2020년 노벨경제학상에서 나왔다.

폴 밀그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노벨위원회가 전화를 걸었을 때 잠들어 있었다. 휴대전화까지 꺼둔 상태였다. 노벨위원회가 아무리 전화해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공동수상자인 로버트 윌슨 교수가 마침 길 건너에 살고 있었다. 윌슨 교수와 그의 아내는 새벽에 직접 밀그럼 교수 집을 찾아가 현관 초인종을 눌렀다.

"폴, 일어나! 노벨상을 탔어!"

이 장면은 밀그럼 교수 집의 보안카메라에 그대로 녹화됐다.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주는 기관도 전화 연결에 실패하자 결국 '이웃 찬스'를 써야 했던 셈이다.

◆노벨상 전화 받았는데…수상자가 아니었다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1987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미국 UCLA 화학자 도널드 J. 크램 교수였다.

하지만 스웨덴 왕립과학원에서 미국으로 전화를 거는 과정에서 엉뚱한 동명이인에게 연결됐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도널드 O. 크램. 화학자가 아니라 카펫 청소업자였다.

그는 새벽 6시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서 자신이 노벨화학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장난전화라고 생각했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상대방이 찾는 사람이 UCLA 교수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잘못 걸린 전화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평생 다시 걸려오기 어려울 '잘못 걸린 노벨상 전화'는 어쩌면 유쾌한 추억이었을지도.

노벨상. 매일신문DB
노벨상. 매일신문DB

◆평범한 전화 한 통이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노벨상 공식 발표는 전 세계가 동시에 지켜보지만, 수상자 개인이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은 의외로 사적이고 평범하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받고,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하기 직전에 받고, 아들과 저녁을 먹은 뒤 받는다. 전화가 꺼져 있어 이웃이 직접 찾아오기도 하고, 세계적인 가수는 노벨상을 주겠다는 사람들의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 심지어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 잠결에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 가운데 올해 다이서로스 교수에게 걸려온 전화 역시 하나의 재미있는 기록으로 남게 됐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스웨덴에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곧 다가올 아침에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아이들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 어찌됐건 인생은 계속 되고 노벨상도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