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갈등에 결국 분당까지…현 상황과 닮아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후 탄핵 정국으로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잠잠하던 더불어민주당 내부 갈등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특히 관망하던 친문계 인사들의 강성 발언이 잇따르면서 '자중지란'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현 상황이 2003년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분당될 당시와 닮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새천년민주당도 내부 갈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개혁 성향의 신주류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직계 정치세력인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기존 구주류가 당의 주도권을 놓고 맞섰다. 신주류는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을 위한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구주류는 민주당의 정통성과 조직 안정성을 강조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결국 '열린우리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2003년 9월 17일 노 전 대통령은 신당 출현을 새 정치질서로 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해 사실상 신당 지지 입장을 밝혔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9월 20일 민주당 신당파 의원 37명이 탈당해 한나라당 탈당파 5명과 함께 '국민참여통합신당' 교섭단체를 등록했다. 이후 정대철 민주당 대표 사퇴에 이어 노 전 대통령마저 민주당을 떠났다. 열린우리당은 11월 11일 원내 47석으로 창당했다. 대통령을 배출한 당이 야당이 되고 신생정당이 여당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후폭풍은 거셌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당은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찬성 193표로 가결했다. 이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하지만 탄핵은 역풍을 맞았다.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었고, 민주당은 9석으로 참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5월엔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탄핵 소추 69일 만에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봄날도 오래 가지 못했다. 2007년 2월 의원 23명의 집단 탈당 등을 거쳐 그해 8월 해체됐다. 두 세력은 2008년 2월 통합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합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분당 사태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비극의 시작"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