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433건 신청에 41명 배상…절반 넘게 심사도 못 받아 FDS 놓쳐도 폰 속 신분증이 과실…신청은 안 날부터 3년
악성 앱 하나로 통장이 비었다면 은행이 물어줄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금융감독원이 은행권에 2024년부터, 저축은행·증권·카드 등 제2금융권에 지난해부터 적용한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기준'에 따른 비대면 금융사고 배상 현황을 취재한 결과, 배상을 받은 사람은 신청자 열에 한 명이 채 안 됐다. 받은 돈도 피해액의 18% 수준이었다.
◆ 내가 누른 송금은 '0원'
제도의 첫 관문은 "누가 송금 버튼을 눌렀나"다. 금감원 기준은 사기범에게 속아 이용자 본인이 직접 이체한 거래를 배상 대상에서 아예 뺀다. 검찰을 사칭한 전화에 속아 스마트폰 뱅킹으로 직접 돈을 보냈다면, 자녀를 사칭한 문자에 넘어가 대포통장으로 이체했다면 심사조차 받지 못한다.
배상 대상은 제3자가 명의를 도용해 몰래 돈을 빼낸 경우다. 악성 앱이 깔린 휴대전화로 누군가 접속해 대출을 일으키고 예금을 옮겼다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차이가 배상 통계를 가른다.
◆ 433건 신청, 41명만 받았다
금감원이 지난해 5월 공개한 은행권 시행 첫 16개월 실적을 보면 문턱이 뚜렷하다. 상담 다섯 건 중 한 건만 신청으로 이어졌고, 신청은 433건이었다. 이 가운데 절반 넘는 250건이 본인 직접 이체 등을 이유로 심사 대상에서 빠졌다.
남은 심사 건 중에서도 열에 넷 가까이는 소비자 중과실로 은행이 면책됐다. 휴대전화 사진첩에 신분증을 저장해 둔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종적으로 배상을 받은 사람은 41명, 금액은 모두 합쳐 1억6천891만원이었다.
◆ FDS 놓쳐도 피해자 과실과 상계
배상이 결정돼도 전액은 아니다. 금감원이 공개한 사례 중 하나는 악성 앱으로 개인정보를 빼앗긴 피해자 명의로 제3자가 대출을 받고 예금을 옮긴 사건이다. 은행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이 이를 잡아내지 못한 과실은 인정됐다. 하지만 피해자가 휴대전화에 신분증 사진을 보관한 과실이 맞물려 피해액의 다섯 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돈만 돌려받았다.
이 비율은 예외가 아니라 은행권 평균이다. 배상이 결정된 피해자 1인당 평균 배상액은 412만원이었다. FDS 경고가 떴는데도 고객이 정상 거래라고 주장해 승인시킨 경우는 아예 배상에서 제외된다.
◆ 2금융권 넓혔지만 123건 중 2건
제2금융권도 지난해부터 같은 기준을 적용했지만 성적은 더 초라하다. 금감원이 2025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낸 자료를 보면, 지난해 1~8월 제2금융권에 접수된 배상 신청 123건 가운데 실제 배상은 2건이었다. 증권·카드·상호금융을 모두 합친 수치다.
은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현희 의원실이 지난달 21일 공개한 금감원 자료를 보면 5대 은행에 제도 시행 뒤 올해 7월까지 접수된 배상 신청액은 10억8천840만원, 실제 지급액은 1억8천29만원이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배상 완료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 재작년 5대 은행 보이스피싱 피해액과 견주면 배상액은 0.1%에도 못 미친다.
◆ 기한은 3년, 기다림은 넉 달
신청 기한은 사고를 안 날로부터 3년이다. 기한은 넉넉하지만 결과를 받기까지는 길었다. 초기 심사는 평균 넉 달 가까이, 길게는 열 달 넘게 걸렸다. 금감원은 지난해 처리를 90일 안에 끝내도록 표준처리기한을 만들었다.
◆ 보이스피싱 1조원 시대, 제도는 어디로
피해는 불어나고 있다. 경찰청 집계로 재작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한 해 전의 거의 두 배로 뛰었고, 대검찰청 수사 통계로 지난해 피해액은 사상 처음 1조2천500억원을 넘었다. 같은 자료를 보면, 피해의 대다수가 피해자가 속아 직접 송금한 유형인데도 이를 심사에서 원천 배제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단체는 금융사가 FDS 고도화 책임을 소비자 부주의 탓으로 돌리며 배상을 피한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은행권과 금융 연구기관은 과실 없는 금융사에까지 배상을 강제하면 비용 부담과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고 반박한다.
이달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배상 실효성과 FDS 의무화가 다뤄질 예정이다. 직접 송금 피해까지 금융사가 일정 범위를 물어주는 무과실 배상책임제 법제화도 연말을 목표로 추진된다. 금융사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 역시 정무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
통장이 털렸을 때 은행이 물어주느냐는 질문의 답은 아직 "누가 버튼을 눌렀느냐"에 달려 있다.






